경전/육조단경

육조단경(12)

敎當 2010. 6. 29. 12:49

 

육조단경을 마치며

 

혜능대사가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基心 : 반드시 머무는 곳이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 라는

 금강경의 한 구절을 듣고 깨우쳤다 한다.

불교에 입문한 후로 나에게 깨우침의 화두는 분별심이었다.

어릴적 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선악으로 대별되는 분별심을 강조 받으며 자라온 나는

성격 만큼이나 고지식하게 내 선악의 잣대를 가지고 모든 사물과 사람을 평가하였다.

결론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무수한 시련과 고난의 연속에서도

그 원인을 깨우치지 못하고 더욱 더 공고히 내 아성을 다져 나갔다.

물론 힘들면 힘들수록 철저히 잘못 되었었고 잘못 되어있고 잘못 되어가는 세상을 탓하거나 원망하면서

나의 올바름을 언젠가는 세상이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마치 세상을 바로잡을 선구자는 마땅히 나 이여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양 어깨에 짊어지고 나아갔지만

결국 얻은 것은 내 생각대로 바뀐 세상이 아니라 병이었다.

병은 나를 나약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정신적 휴식도 함께 주었다.

앞만 보고 달리던 자리에서 내려와 마음을 쉰 곳이 불교였다.

그리고 거기에서 발견한 글이 분별심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혜능대사는 큰 틀에서의 마음 쓰는 법을 본 것이요

난 단지 마음 쓰는 여러 방법 중에서 좀 더 구체적이며 작은 방법인

분별심이라는 화두를 잡은 것이 다를 뿐이었다.

이 분별심을 놓자 양파껍질 벗겨지듯이 점 점 내 자성의 문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처음 불교에 입문하여 읽은 책이 만화로 보는 불교 이야기였다.

깊이는 없지만(사실 그 당시 나에게는 굉장히 깊이 있고 심오한 이야기 였다)

불교 전반에 걸쳐 수박 겉핧기 식으로 알게 되었다.

그후 본격적으로 불교에 관한 서적을 조금 보게 되었고

그 결과 <마음은 무엇이고 어찌 써야 하는가?>라는 화두를 가지고

많은 경이나 조사어록이나 시중의 불교관련 책들이 다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원래 혜능 스님이 요즘 말로 까막눈이다.

5조 홍인대사로 부터 법을 전수 받고 십 수 년이 지난 후 법을 설하실 때

법달(法達)이라는 스님이 법화경에 대하여 물어 보았지만

혜능대사는 문자를 알지 못하니 읽어 보라고 말한다.

사람은 어느 지위에 오르면 자기의 학벌이나 출신지 가문 등에 관하여 부끄러워하면서

숨기거나 위조하려 드는 것이 현대에서도 비일 비재 하건만

이 혜능 스님은 그런 것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

과연 대사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문자로 써 놓으면 궁금해 하는 이에게 “그 책을 읽어 보거라”하면 되고

읽는 독자가 알던지 모르던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문자로 기록하지 않은 까닭에 법을 구하는 사람에게 설명이 필요하였을 것이고

설명하자니 알기 쉽도록 하고 알아들었나 확인해야 하고............

일상생활에서 주위에 좀 아는체하면서 유식하다 떠드는 사람을 보면

책에서 읽은 내용을 그대로 외워 줄줄줄 얘기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책을 쓰는 저자는 우매한 우리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해서 썻으니

어지간하면 우리보다 좀 더 나은 지식과 학식이 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그 내용을 읽고 이해를 하였다면 사람의 근기에 따라 부처님이 횡설수설 하셨듯이 쉽게 설명을 할 텐데

자신조차 이해를 못하면서 아는체를 하려니 눈 높이가 딱 저자 수준이다.

어렵게 설명한다는 말이다.

 

예전에는 강사가 청중이 알아듣지 못하는 어려운 말과 글로써 강의를 하면

대단한 식견가로 추앙받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가 다 아는 내용을 가지고 설명을 하면 말 잘하는 재담꾼으로 치부하고

잘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나 한문 등을 섞어가며 강의를 하면

“야! 저사람 대단해!”라며 강의 내용은 알지도 못하면서도

마치 너희들은 몰라도 적어도 나는 알아들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강사의 이력을 줄줄줄 얘기하며 의기양양하던 모습들.....

현대에 각광받는 강사는 딱딱한 일방통행식 강의에서 벗어나

청중과 눈높이를 맞춘 서로 소통되는 부드러운 강의를 선호 한다.

강사가 학벌이 어디까지이고 어느 곳에 유학을 갔다 왔으며

어떤 직장에 있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요즈음은 자기의 분야에서 한길을 파다 반열에 올라 강의를 하시는 분들을 적지 않게 보게 된다.

생활에 밀접한 경험에 의한 이야기들로 강의를 하다 보니 귀에 쏙쏙 들어 온다.

어쩌면 이 혜능 대사도 정규 교육을 받고 책을 보면서 외워내는 공부를 하였다면

육조단경이 이리 마음에 와 닿으면서도 심오한 내용으로 가득 채워지는

설법을 하지는 못하였으리라 생각이 든다.

보통 책을 읽다 보면은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치게 되는데

이 육조단경은 줄을 치지 않을 곳이 없을 만큼

나에게 와 닿는 부분이 많았던 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불교 공부나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는 것이 참이고 거짓이며 어찌 수행해야 하는 지를

전편에 걸쳐서 보여 준다.

물론 나만 그런 것인 줄은 모르겠지만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읽으며 깨달음은 오는것 같은데 아직 실생활에서 어찌 접목해야 할지는 깜깜하다.

낡은 껍질의 나를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겠다고 다짐해 보면서 육조단경을 마치는데

마음 한구석에는 신수스님이 지성스님에게 혜능스님이 어찌 법을 전하는지 알아보고 오라고 시켰더니

기껏 한다는 소리가 신수스님 밑에서는 법을 깨우치지 못했다 하면서

(스승인 신수스님을 욕보이지 말고 그럼 진즉에 신수스님 밑에서 나와 제 발로 혜능스님에게 가서

법을 구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법을 어찌 전하는지 보고 오라는 신수스님의 당부는 잊어버리고

눌러 앉은 지성스님이 마음에 걸리니.......흐흐흐.......아직도 분별심이 남아있는 까닭일 것이다.

어서 빨리 이 마음에서 벗어나 성불 해야겠다.

여러분도 꼭 성불하시길 발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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