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육조단경

육조단경(5)

敎當 2010. 6. 21. 10:21

 

13. 三歸 - 세 가지 귀의

 

"지금 이미 참회하기를 마쳤으니 선지식들을 위하여 '무상삼귀의계(無相三歸依戒)'를 주리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깨달음의 양족존(覺兩足尊)께 귀의하오며,

                   바름의 이욕존(正離欲尊)께 귀의하오며,

                   깨끗함의 중중존(淨衆中尊)께 귀의합니다.

지금 이후로는 부처님을 스승으로 삼고 다시는 삿되고 미혹한 외도에게 귀의하지 않겠사오니,

바라건대 자성(自性)의 삼보께서는 자비로써 증명하소서'하라.

선지식들아,

혜능이 선지식들에게 권하여 자성의 삼보에게 귀의하게 하나니,

부처란 깨달음(覺)이요

법이란 바름(正)이며

승이란 깨끗함(淨)이니라.

 

자기의 마음이 깨달음에 귀의하여 삿되고 미혹이 나지 않고,

적은 욕심으로 넉넉한 줄을 알아(小欲知足) 재물(財)을 떠나고

색(色)을 떠나는 것을 양족존(兩足尊)이라고 한다.

 

자기의 마음이 바름으로 돌아가 생각마다 삿되지 않으므로 곧 애착이 없나니

애착이 없는 것을 이욕존(離欲尊)이라고 한다.

 

자기의 마음이 깨끗함으로 돌아가 모든 번뇌와 망념이 비록 자성에 있어도

자성이 그것에 물들지 않는 것을 중중존(衆中尊)이라고 하느니라.

 

범부는 이것을 알지 못하고 날이면 날마다 삼귀의계를 받는다.

그러나 만약 부처님에게 귀의한다고 말한다면 부처가 어느 곳에 있으며

만약 부처를 보지 못한다면 곧 귀의할 바가 없느니라.

이미 귀의할 바가 없으면 그 말이란 도리어 허망될 뿐이니라.

선지식들아, 각각 스스로 관찰하여 그릇되게 마음을 쓰지 말라.

경의 말씀 가운데

'오직 스스로의 부처님께 귀의한다(只卽言自歸依佛:화엄경 정행품)'하였고

다른 부처에게 귀의한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자기의 성품에 귀의하지 아니하면 돌아갈 바가 없느니라."

 

14. 性空 - 성품이 빔

 

"지금 이미 삼보에게 스스로 귀의하여 모두들 지극한 마음들일 것이니

선지식들을 위하여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리라.

선지식들아, 비록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생각은 하나 알지 못하므로

혜능이 설명하여 주리니, 각각 잘 들어라.

마하반야바라밀이란 서쪽 나라의 범어이다.

당나라 말로는 '큰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른다(大智惠彼岸到)'는 뜻이니라.

이 법은 모름지기 실행할 것이요, 입으로 외는 데 있지 않다.

입으로 외고 실행하지 않으면 꼭두각시와 같고 허깨비와 같으나,

닦고 행하는 이는 법신과 부처와 같으니라.

어떤 것을 마하라고 하는가?

마하(摩訶)란 큰 것이다.

마음의 한량이 넓고 커서 허공과 같으나 빈 마음으로 앉아 있지 말라.

곧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지느니라.

허공은 능히

일월성신(一月星辰)과 산하대지(山河大地)와 모든 초목과 악한 사람과 착한 사람과 악한 법과 착한 법과 천당과 지옥을 그 안에 다 포함하고 있다.

세상 사람의 자성이 빈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자성이 만법(萬法)을 포함하는 것이 곧 큰 것이며 만법 모두가 다 자성인 것이다.

모든 사람과 사람 아닌 것과 악함과 착함과 악한 법과 착한 법을 보되,

모두 다 버리지도 않고 그에 물들지도 아니하여 마치 허공과 같으므로 크다고 하나니,

이것이 곧 큰 실행(摩訶行)이니라.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 외고 지혜 있는 이는 마음으로 행하느니라.

또 미혹한 사람은 마음을 비워 생각하지 않는 것을 크다고 하나, 이도 또한 옳지 않으니라.

마음의 한량이 넓고 크다고 하여도, 행하지 않으면 곧 작은 것이다.

입으로만 공연히 말하면서 이 행을 닦지 아니하면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15. 般若 - 반야

 

"어떤 것을 반야(般若)라고 하는가?

반야는 지혜이다.

모든 때에 있어서 생각마다 어리석지 않고 항상 지혜를 행하는 것을 곧 반야행(般若行)이라고 하느니라.

한 생각이 어리석으면 곧 반야가 끊기고 한 생각이 지혜로우면 곧 반야가 나거늘,

마음속은 항상 어리석으면서 '나는 닦는다'고 스스로 말하느니라.

반야는 형상이 없나니, 지혜의 성품이 바로 그것이니라.

어떤 것을 바라밀(波羅密)이라고 하는가?

이는 서쪽 나라의 범음으로 '저 언덕에 이른다(彼岸到)'는 뜻이니라.

뜻을 알면 생멸을 떠난다.

경계에 집착하면 생멸이 일어나서 물에 파랑이 있음과 같나니,

이는 곧 이 언덕(此岸)이요,

경계를 떠나면 생멸이 없어서 물이 끊이지 않고 항상 흐름과 같나니,

곧 저 억덕(彼岸)에 이른다고 이름하며,

그러므로 바라밀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 외고 지혜로운 이는 마음으로 행한다.

 

생각할 때 망상이 있으면 그 망상이 있는 것은 곧 진실로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 생각마다 행한다면 이것을 진실이 있다고 하느니라.

이 법을 깨친 이는 반야의 법을 깨친 것이며 반야의 행을 닦는 것이다.

닦지 않으면 곧 범부요 한 생각 수행하면 법신과 부처와 같으니라.

선지식들아, 번뇌가 곧 보리니(卽煩惱是菩提),

앞생각을 붙잡아 미혹하면 곧 범부요 뒷생각에 깨달으면 곧 부처이니라.

 

선지식들아, 마하반야바라밀은 가장 높고 가장 으뜸이며 제일이라,

머무름도 없고 가고 옴도 없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이 가운데로부터 나와

큰 지혜로써 저 언덕에 이르러 오음(五陰)의 번뇌와 진로(塵勞)를 쳐부수나니,

가장 높고 가장 으뜸이며 제일이니라.

 

가장 으뜸임을 찬탄하여 최상승 법을 수행하면 결정코 성불하여,

감도 없고 머무름도 없으며 내왕 또한 없나니,

이는 정(定)과 혜(慧)가 함께 하여 일체법에 물들지 않음이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이 가운데서 삼독을 변하게 하여 계·정·혜(戒定惠)로 삼느니라.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팔만 사천의 지혜를 좇느니라.

무엇 때문인가?세상에 팔만 사천의 진로(塵勞)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진로가 없으면 반야가 항상 있어서 자성을 떠나지 않느니라.

이 법을 깨친 이는 곧 무념(無念)이니라.

기억과 집착이 없어서 거짓되고 허망함을 일으키지 않나니 이것이 곧 진여(眞如)의 성품이다.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 모든 법을 취하지도 아니하고 버리지도 않나니,

곧 자성을 보아 부처님 도를 이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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