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불교경전 이야기

십이연기법(1)

敎當 2008. 5. 16. 19:53

십이 연기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인연의 법칙을 상세히 분석해 놓은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생성, 변화, 발전, 소멸의 연결고리를 열두가지 과정으로 나타낸것이 십이인연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십이인연을 관찰함으로써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육년 고행을 마치고 다시 명상에 들어갔을때 그 명상 내용이 바로 십이인연이었습니다.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출가의 동기였다면 십이인연은 생사해탈의 동기가 된 것입니다.

십이인연은 태어나기 이전부터 태어나서 일어나는 과정과 살다가 죽고,

죽은 후의 상태를 열두 가지로 분류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삶은 열두 단계로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緣起法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항상 법계에 있는것이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내용이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든 교설은  이 연기에서 비롯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법이며 과거의 모든 부처님들도 이것을 깨달음으로써 정각을 성취한 것이다.

구체적인 십이연기법을 살펴보면

 

첫째는 무명(無明)으로 말 그대로 어둠이며 과거세상에서의 번뇌의 근본인 무지를 말하는 것이다.

 이 무명 때문에 나고 죽는 윤회의 수레바퀴를 되풀이 하여 굴리고 있는 것입니다.

 무명은 곧 중생의 생존 형태를 나타낸 말이기 때문에 흔히 근본 무명이라고 말합니다.

 무명은 정신작용의 가장 초기 단계입니다.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기 이전의 상태입니다.

 진리를 바르게 볼 수 있는 지혜가 결여된 것이 바로 무명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무명이 없다면 중생의 모든 마음이   그대로 진리와 하나가 될것이니 애를 정적(情的) 번뇌의 근본이라 함에 반해 이 무명은 지적(知的)번뇌의 근본이라

 하고 그래서 애욕을 끊어 해탈하는 것을 심해탈(心解脫)이라 하고 무명을 끊어 해탈하는 것을 혜해탈(慧解脫)

 이라고 합니다.

 

둘째는행(行)으로 어두운 정신세계에서 무엇인가 요동하며 움직익 시작하는 단계를 말합니다.

 행은 잠재적인 무의식력이며 충동력입니다.

 또한 행은 업(業)으로서 이 행에 의해서 식이 있게되는 것입니다.

 업에는 삼업이라 하여 身業 口業 意業이 있는데 신업 구업은 의업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므로 삼업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의업이라 할 수 있으며 우리가 대상을 인식할 때 마음에 조그마한 티끌도 없다면 진리를 그대로 인식할 수 있

 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업을 짓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행인 것입니다.    

 

셋째는 식(識)으로 무엇인가를 분별하는 인식작용을 말합니다.

 새로운 생을 시작해야 겠다는 사고를 시작하는 순간 입니다.

 과거의 행에의해 인간 존재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는 의식작용을 말합니다.

 식의 상태는 이미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간 때로 볼수 있습니다.

 

넷째 명색(名色)은 모든 정신적인 존재를 표시하는 명과 모든 물질적인 존재를 표시하는 색이 합친것으로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가서 받는 오온 즉 몸과 마음을 말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막연하게 정신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이 나누어 집니다.

 

다섯째 육입(六入)은 육처라고도 하는데 眼.耳.鼻.舌.身.意의 육근이 형성되는 시기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어머니의 뱃속에서 여러가지 기관들이 형성되는 시기를 말합니다.

 이때부터 6가지 외부의 자극이 들어온다고 해서 육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경전에서는 어머니의 태내에서 제 5주 정도가되면 여러 근육이 완성된다고 합니다.

 

여섯째는 촉(觸)으로 외부세계와 접촉하는 시기 입니다.

 일반적으로 촉의 시기에는 느낌만 있을 뿐이지 느낌을 식별하는 기능은 없다고 말합니다.

 촉은 태어나서 느끼는 단순한 인식작용 입니다.

 이 단계에서 눈으로 밝고 어두움을, 귀로 소리등을 촉을 통하여 무엇인가를 감지하는 것입니다.

 

일곱번째는 수(受)로 감정을 감수(感受)하고 인상을 느끼는 능력이 발동되는 시기 입니다.

 수는 육입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분별하여 받아들이는 단계입니다.

 예를 들면 싫은것은 배척하고 좋은것은 받아들이는 현상을 보이는 것이 수의 단계입니다.

 삼수(三受)라 하여 괴로운 감각인 고수(苦受) 즐거운 감각인 낙수(樂受)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인

 사수(捨受)가 있습니다.

 

여덟번째는 애(愛)로 애착심을 느끼는 단계입니다.

 애착심은 애착하는 대상을 계속 진행시키려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이성을 느끼는 감정은 바로 애의 단계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목이 말라 물을 �듯이 오욕(五慾)을 갈구하는 것으로 중생이라면 누구나 욕망을 갈구하며 또 욕망을 만족하기

 위해서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애는 삼애설(三愛說)이라고 하여 욕유애(慾有愛) 색유애(色有愛) 무색유애(無色有愛)가 있고 오욕의 만족을

 얻고자 하는 욕애(慾愛)와 유견(有見) 상견(常見)을 가지고 이를 실현 시키려 하는 무유애(無有愛)도 있습니다.

 

아홉번째는 취(取)로 쉽게 말하면 사랑하는 감정이 일어나면 그것을 끝까지 취하려는 마음을 말합니다.

 즉 자기가 원하는 것이나 좋아하는 것을 취하고 가지려는 행동을 말합니다. 취는 곧 집착을 의미합니다.

 취는 4취(四取)라고 하여 오욕경에 대한 집착인 욕취(欲取) 그릇된 학설이나 견해에 대해 고집하는 견취(見取)

 그릇된 계행에 대해 진실하고 청정하다고 고집하는 계금취(戒禁取) 자기만의 의견과 자기만의 생각에 사로잡혀

 자기의 주장이 바른 것이라고 고집하는 아어취(我語取)가 있습니다.

 

열번째 유(有)는 한번 취한것은 자기것으로 하려는 소유욕을 말합니다.

 유는 애와 취를 바탕으로 하여 거기서 여러가지 업을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앞의 애 취와 더불어 유는 우리 인생살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유는 삼유(三有)라고 하여 오욕의 지배를 받아 생활하는 세계인 욕유(欲有) 욕유와 같이 여러가지 탐욕에

 지배되는 세계는 아니지만 아직 물질인 색상(色相)에 의해 생활하는 세계인 색유(色有) 하등의 물질적인 속박도

 없는 순수한 정신적인 세계인 무색유(無色有)로 분류 합니다.

 

열한번째는 생(生)으로 이세상에 생명체를 받아서 탄생하였음을 의미하며 중생에게 고통을 가져다 주는 조건이

 다. 그러므로 생이란 중생에게 있어서 고통의 시발점이며 노(老)는 그 진행과정이며 사(死)는 그 결과인 것이며

 이론적으로 생이 있기에 노가있고 노가있기에 사가 있으며 이 생과 노와 사가 합쳐져서 중생에게 있어서 일생이

 되는 것이고 또 중생이 가질수 있는 모든 고통의 대표적인 것입니다.

 여기에 병(病)을 더해서 생노병사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중생의 중생고의 대표적인 것인 4고(四苦)입니다.

 

열두번째인 노사(老死)는 살아가다 늙고 죽는것을 의미하며 그 이외에 우(憂) 비(悲) 고(苦) 뇌(惱)등 중생이

 갖고 있는 모든 고통을 의미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