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불교경전 이야기

공(空)사상1

敎當 2008. 5. 9. 12:01

옛날 중국 변방에 어느 노인이 외동 아들을 데리고 살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말타기를 좋아해서 하루도 쉬지 않고 말타기를 즐겼습니다.

그러던 그 어느 날 아들은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노인을 위로하며 슬퍼 했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그 일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집을 나갔던 그 말이 다른 말 한 필을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들 좋아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그 노인은 아무런 마음의 동요도 없이 덤덤한 표정이었습니다.

그 외아들은 말이 두 필이나 되어 더욱 신이 나서 말타기를 계속 하였습니다.

이 말에서 저 말로 뛰어 오르며 말타기를 계속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외아들은 그만 잘못하여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쳤습니다.

또다시 동네 사람들은  노인을 위로하며 다리 병신이 된 아들을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런일이 있은지 얼마 안되어 나라에 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마을의 건장한 청년들은 모두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리 병신이 된 그 아들은 전쟁에 나갈수 없었습니다.

전쟁에 나간 마을의 청년들은 대부분 죽었지만

다리 병신이 된 그 아들은 살아남아 아버지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합니다.

흔히 무슨일의 결과에 따라 인생만사 새옹지마라는 표현을 잘 씁니다.

이것은 곧 좋은 것이 나쁜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고, 나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그런것이 가능 할 까요? 그것은 근본이 공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모든 현상계는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무엇으로 든지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근본이 공이기 때문에 그러한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고정불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아집과 집착은 세상은 늘 영원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자기라고 하는 거짓 껍데기에 집착하여 생기는 문제는 끝이 없습니다.

특히 보이지 않는 감정으로 인해 빛어지는 문제는 우리에게 큰 상처를 가져다 줍니다.

결국 자기라고 하는 실체는 텅 빈 것이므로

그 텅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자기의 인생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통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다고 해도 자신의 몸과 마음이 텅 비어서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괴로움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대학 진학에 실패 했다고 할때 자신의 몸과 마음이 텅 빈것으로 생각하면

괴로울게 없는 것입니다.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좋은 방향으로 전화위복이 되어 또 다른 삶을 전개 할 수도 있습니다.

대학 진학에 실패해서 삶을 살다보면은 또다른 배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자신이 필요로 할때는 더욱 열심히 할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공부의 순서만 바뀌어 있을 뿐입니다.

본래 공한 것이기 때문에 한순간 한순간 가능성은 무한한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있고 없고를 떠나서 공한 것입니다.

 

                                              - 무비스님의 반야심경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