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 봉암사에 모인 성철 스님 일행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것을 새로 만들었다.
성철 스님의 기억.
"제일 먼저 비단으로 붉게 만든 가사들을 모두 벗어서 불싸질러 버리고 나서
우리가 직접 불교의 가르침에 맞는 괴색(壞色) 옷을 만들었제.
괴색은 청(靑) .황(黃) .적(赤) 의 3종을 섞어 만드는 기라.
바리때(밥그릇)도 나무로 만든 거를 전부 깨부수고 나니까 뭐 대신할 께 없어
처음에는 양재기로 밥을 담아 여럿이 같이 묵었제.
나중에는 옹기점에 가서 옹기를 맞춰서 썼지. "
스님들이 평소에 입는 장삼도 마찬가지다.
성철 스님이 송광사 말사인 삼일암에서 본 적이 있는 보조국사의 장삼을 기억해냈다.
도반인 자운 스님에게 그 얘기를 하자 자운 스님이 삼일암에 가서 보고 와서는 그 모양대로 만들었다.
지금 조계종 스님들이 입는 장삼이 바로 그 것이다.
보조국사의 장삼은 6.25 때 불타 재가 되었다.
이밖에 육환장(六環杖.고리가 6개 달린 지팡이) 도 만들고 삿갓도 쓰기 시작했다.
식생활도 바뀌었다.
속인과 다름 없던 세끼 식사를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바꾸었다.
먼저 아침에는 꼭 죽을 먹었고, 점심은 사시(巳時.오전 10시) 에 맞춰서 먹었다.
저녁끼니는 약석(藥石)이라고 해 아주 조금 먹었다.
원래 인도의 율장(律藏) 에서는 '오후 불식(不食) ' 이라해 아무 것도 먹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불교에서는 참선하는 데에 너무 기운이 없어도 안되므로
약(藥) 삼아 바리때 펴지 말고 조금만 먹도록 허용하고 있다.
성철 스님 일행은 현실에 맞춰 중국의 규율을 택한 셈이다.
자운 스님이 계율을 열심히 공부해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는 방안을 많이 제안했다.
사실상 사라진 전통인 포살(布薩)도 되살렸다.
포살은 사찰내에 사는 모든 스님들이
보름에 한번씩 모여앉아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고백하고 비판받고 참회하는 제도다.
지금도 선방에선 포살을 하는데 봉암사에서 비롯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성철 스님의 회고.
"그래 해서 전부 새로 바꾸는 기라.
말하자면 일종의 혁명인 셈이지.
그런 중에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 하면
뭐든지 우리가 우리 손으로 전부 해야한다는 거였지. "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 ' 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지금은 신도들이나 행자 또는 절에서 일하는 사무원이나 잡역부들이 많은 일을 하며 스님들의 수행을 도와준다.
그러나 당시 봉암사에선 결사한 스님들끼리 모두 헤쳐가야 했다.
원칙대로 하자니 하나도 쉬운 것이 없었다.
스님들의 일상사를 대충 정리하고 착수한 일은 신도들과의 관계 정립이다.
조선왕조 5백년간 천민(賤民) 취급을 받아온 승려들은 당시까지만 해도 반말의 대상이었다.
일제시대가 끝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들은 누구나 스님들을 "야" 하고 불렀다.
성철 스님의 회고.
"스님이야 뭐 전부 종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 '야' '자' 하고 하대하는 거지.
나도 그런 소리 많이 들었제.
그런데 그게 부처님 가르침에 안맞는 거라.
그래서 우리도 부처님의 법을 세우기위해 보살계(菩薩戒) 를 만들기로 했지. "
보살계란 재가불자
즉 신도들이 지켜야하는 계율을 말한다.
율장연구를 맡았던 자운 스님이 보살계를 만들고 가르쳤다.
"스님은 부처님 법을 전하는 당신(신도) 네 스승이고
신도는 스님한테서 법을 배우는 제자야.
법이 거꾸로 되어도 분수가 있지 스승이 제자 보고 절하는 법이 어디 있어.
조선 5백년 동안 불교가 망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는데 그것은 부처님 법이 아니야!
부처님 법에 신도는 언제나 스님네한테 절 세 번 하게 되어 있어.
그러니 부처님 법대로 스님들에게 절 세 번 하려면 여기 다니고
부처님 법대로 하기 싫으면 오지 말아!"
신도들을 모아놓고 자운 스님이 호령을 했는데 모두들 그 가르침에 따라 일어나 절을 세번씩 했다.
신도가 스님들 보고 절 세 번 한 것은 근세에 적어도 조선왕조 이후로는 당시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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