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봉암사의 혁신

敎當 2020. 8. 5. 16:55

성철 스님이 1947년 한국불교의 정초를 잡기위한 결사의 장소를 물색하다 경북 문경 봉암사로 결정했다.

당시 봉암사는 초라한 절이었지만 거대한 바위산인 희양산 자락

양지 바른 명당에 자리잡고 있었다.

봉암사는 지금도 조계종 특별 종립선원(禪院) 으로 참선하는 스님들만 모여사는 곳

일반인은 부처님오신날 같은 아주 특별한 경우 외엔 들어갈 수 없다.

 

처음 결사를 시작한 초기 멤버는 성철 스님 외에 우봉.보문.자운 스님까지 모두 네 명에 불과했다.

청담 스님은 해인사에서 가야총림(伽倻叢林) 의 틀을 잡는다고 바빠 '결사' 의 약속까지 해놓고 합류하지 못했다.

 

바로 이어 이 나라의 불교계를 이끌어갈 스님들이 속속 희양산 자락으로 찾아왔다.

 

향곡.월산.종수 스님에 이어

당시엔 젊은 축이었던 도우.보경.혜암(현 조계종 종정) .법전(현 원로회의 의장) .성수 스님 등이 모여 들어

대략 20명 내외가 3년을 같이 살았다.

성철스님의 회고

 

"우리가 산에 들어가 첫 대중공사(大衆公事.스님들의 총회) 로 뭘 했나 하면

'법당 정리부터 먼저하자' 이거야.

세상에 법당 정리를 하다니 그기 무신 소리인가 하면

그때까지 가만히 보면 간판은 불교라 붙여놓고는 진짜 불교가 아이다 말이야.

칠성단도 있고, 산신각도 있고 온갖 잡신들이 소복이 법당에 들어앉아 있는 거라.

아무리 그래도 법당에 잡신들이 들어앉을 수는 없는 기라.

그러니 법당부터 먼저 정리하자, 결심했제.

그래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 외에는 전부 다 정리했지.

칠성탱화, 산신탱화, 신장탱화 할 것 없이 전부 싹싹 밀어내 버리고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만 모셨제. "

 

당시까지만 해도 토속신앙과 불교가 한데 엉켜 구분이 잘 안될 정도였다.

법당의 풍경 역시 그랬는데

봉암사 결사에서 비로소 요즘 우리나라 조계종 사찰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의 법당이 차려진 셈이다.

 

다음은 불공(佛供) .

불공이란 불심을 가진 개인 스스로가 성심껏 기도하고 염불을 하는 것이지

중간에서 스님들이 목탁 치며 축원해주는 것이 아니다.

성철 스님의 말.

 

"꼭 부처님께 정성드리고 싶은 신심있는 사람이 있으면 지가 알아 물자를 갖다놓고 절하라 그 말이라.

우리 같은 중이 중간에서 삯꾼 노릇은 안 한다 말이제.

그래 하기로 마음 먹고 신도들에게도 알아서 절하라고 시켜놓으니

불공 드려달라는 사람이 그만 싹 다 떨어져 버리는 거라. "

 

당시 절에는 '칠성기도' 라 하여 소원을 비는 불공이 많았는데,

봉암사에선 스님들이 목탁 치고 축원을 안 해 주니까 아무도 찾아오지 않게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영가천도(靈駕薦度.넋을 인도하는 제례) 도 문제가 됐다.

 

"부처님 말씀에 누가 죽으면 49제를 지내는데,

경전을 읽어주라고 했지 북 두드리고 바라춤 추라는 말은 없거든.

그런데 우리가 봉암사에 들어가니 마침 49재 하는 사람이 있는 거라.

그래서 우리가 '경은 읽어 주겠지만 그 이외에는 해 줄 수 없소' 하니

그 사람이 '그러면 안할랍니다' 면서 '그런데 재() 도 안하면 스님들은 뭘 먹고 어떻게 살지요' 라고 하는 거라.

그래서 우리가 '산에 가면 솔잎 꽉 찼고 개울에 물 출출 흘러내리고 있고 하니

우리 사는 것 걱정하지 마시오' 하고 돌려보냈제. "

 

간단히 말해 당시까지 스님들이 먹고 살던 방편이었던 모든 행위를 금지한 것이다.

대신 부처님이 가르친 호구지책

즉 탁발(托鉢) 을 해서 최소한의 식량을 구하기로 했다.

이어 가사.장삼.바릿때 등도 모두 바로잡을 대상들이었다.

 

"부처님 법에 바리때는 와철(瓦鐵) 이니 쇠로 하든지 질그릇으로 해야 되는 거라.

나무로 된 바루는 안되지.

가사, 장삼도 비단으로 못하게 가르쳤는데,

당시에 보면 전부 비단으로 해입어 색깔도 괴색(壞色) 을 해야 되는데 전부 벌겋게 해가지고.........

전부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라.

그래서 비단으로 된 가사,

장삼, 그리고 나무바리때까지 싹 다 모아가지고

탕탕 부수고 칼로 싹싹 잘라 마당에 내놓고는 내 손으로 불 싹 다 질렀뿌렀제. "

 

봉암사 결사는 이처럼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 는 성철 스님과 도반들의 뜨거운 구도열로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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