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한국전쟁 피난시절

敎當 2018. 12. 4. 11:38

불필스님(성철스님의 딸) 은 아버지 얼굴을 처음 본 그 날,

"가라" 고 호통치는 아버지 대신 자신을 "내 딸" 이라며 자상하게 달래주었던

향곡(香谷) 스님의 모습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그 날은 불교와의 첫 만남이기도 했다.

 

먹을 것을 내주며 얘기를 시키던 향곡스님이 수경(불필스님의 속명) 에게 물었다 

"니는 앞으로 크면 뭐가 되고 싶노?" 

 

향곡스님도 경상도 사투리를 썼다.

수경은 어릴 적부터 미국의 발명왕 에디슨을 좋아했다.

 

"발명가가 되고 싶습니다. "

 

그렇게 시작된 문답인데 어떻게 얘기하다 보니 "발명가 중에서도 사람을 연구하는 발명가,

사람은 어디서 와서,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를 연구해 보고 싶다" 는 식으로 얘기가 흘러갔다.

그러자 향곡스님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철() 수좌보다 더 큰 사람이 되겠는데. "

 

향곡스님은 성철스님을 '철수좌' 라고 불렀다.

성철스님과 가까운 노스님들이 흔히 그렇게 불렀다.

여기서 '수좌' 란 선승(禪僧) 이란 말이고,

앞의 수식어인 '' 이란 성철스님의 법명 중 뒷글자를 따서 부른 것이다.

향곡스님이 어떻게나 다정스레 대해주는지 늦게까지 얘기를 나눴다.

끝내 눈 큰 스님, 아버지 성철스님은 나타나지 않았다.

 

"묘관음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절 아래로 내려다보니 끝 없는 바다가 펼쳐져 있더구만.

그 때 바다를 처음 봤지.

마음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나 절집의 낯설음도 모두 바다 속에 묻힌 듯. "

 

그렇게 아버지와의 첫 만남,

절집에서의 첫 밤은 짧고 가벼운 기억으로 끝났다.

향곡스님이 손에 쥐어준 차비로 좋은 필통을 사 오래도록 사용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다음해 6.25전쟁이 터졌다.

서울이 갑자기 어수선해졌다.

포소리, 총소리에 숨을 죽이고 지하실에서 이불을 덮고 하룻밤을 지내고 나니

탱크와 인민군이 열을 지어 서울로 들어왔다.

한 달을 머물다가 더 이상 서울에 있을 수 없겠다 싶어 수경은 고향집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고

피난민 행렬에 가세했다.

 

3백여 명의 일행이 한 무리를 이뤄 남쪽으로 걸어갔다.

비행기가 보이면 콩밭이나 숲 속에 엎드려 숨었다.

멀쩡히 옆에 있던 사람이 일어나지 못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죽고 헤어지고, 산 넘고 물 건너 마침내 대구에 도착했다.

다음날 국회의원인 친척 이병홍씨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간신히 마산행 열차를 탈 수 있게 해주었다.

 

잿더미로 변한 진주에 도착해 아는 분을 만나 묵곡 소식을 들으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눈물을 삼켜가며 고향집에 도착하니 할아버지는 살아계셨다.

소를 끌고가는 인민군을 혼내다 이를 말리는 동네 사람에 업혀 나갔던 것이 잘못 소문난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살아온 손녀를 다시는 서울로 보내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수경은 진주사범 병설 중학교에 다니게 됐고,

졸업후엔 진주사범학교에 입학했다.

 

중학교 시절이었다.

친구의 권유에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스님이 된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 이 적지않게 작용한 결과였다고 한다.

할머니가 아버지를 생각해서인지 자꾸만 "잘 생각해봐라" 는 말씀을 했다.

 

한편 성철스님은 묘관음사에 있다가 전쟁이 나자 남쪽으로 내려와 경남 고성 문수암에 잠시 머물렀다.

그러다 전쟁이 소강 상태에 들어갈 즈음

통영 안정사 옆 골짜기에 초가집을 짓고 '천제굴(闡堤窟) ' 이라 이름 붙이고 들어 앉았다.

 

묵곡 근처에서 생활한 적이 있어 할머니(성철스님의 어머니) 와 가까웠던

비구니 성원(性原.현 해인사 국일암 감원) 스님이 그 소식을 듣고 할머니를 모시고 천제굴로 갔다.

 

큰스님은 어머니를 보자마자

"와 우리 어무이를 이리 데려왔노?" 라며 성원스님을 꾸짖기 시작했다.

어찌나 엄하게 꾸짖는지 성원스님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러고 얼마 지난 후 수경이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 보니 어떤 스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의 해인사 방장이신 법전스님이다.

 

"큰스님이 한 번 오라고 하신다. "

 

생각지도 않던 아버지 성철스님의 호출이었다.

 

고등학생 수경이 할머니와 함께 진주에서 고성으로 가는 산등성이를 넘어

천제굴로 아버지 성철스님을 찾아갔다.

 

도중에 할머니가 길을 잘못 들어 날이 저무는 바람에 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됐다.

억지로 따라온 수경은 잠자리가 불편한 데다 화까지 나 잠을 설쳤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바로 옆에 암자가 있었다.

 

두번째로 아버지를 만났다.

할머니는 성철스님께 드린다고 음식을 잔뜩 만들어 머리에 이고 산길을 올라왔다.

그 어려움과 정성을 성철스님은 전혀 알아주지 않았다.

 

"그 음식 해온 거 전부 산아래 동네 못사는 사람들 다 주고 와. "

 

수경이 음식 보따리를 들고 산을 내려가 생면부지인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잔뜩 골이 나 다시 암자로 올라왔는데,

할머니가 "스님께 인사드리라" 며 재촉한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성철스님을 바라봤다.

큰스님이 한마디 했다.

 

"니 참 못됐네. "

 

수경은 마음속으로 "사람 마음을 참 잘 아는구나" 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굴에 묻어나는 불만을 결코 떨치지는 않았다.

그런 딸을 향해 성철스님 특유의 문답이 시작됐다.

 

"그래, 니는 뭐를 위해 사노?"

 

불만은 불만이고, 아버지의 물음이니 생각을 가다듬어가며 대답했다.

 

"행복을 위해서 살려고 합니다. "

 

성철스님이 다시 물었다.

 

"행복에는 영원한 행복과 일시적인 행복이 있거든. 니는 어떤 행복을 위해 살 거고"

 

이 말을 듣는 순간 수경은 속으로 '일시적인 행복이 아닌 영원한 행복을 위해 살겠다' 는 결심을 했다.

그러자 묘하게도 그때까지 큰스님을 미워했던 생각들이 봄눈 녹듯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 마음의 변화를 느끼며 성철스님께 물었다.

 

"어떤 것이 영원한 행복이며, 어떤 것이 일시적인 행복입니까?"

 

"부처님처럼 도를 깨친 사람은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대자유인이고,

안그라고 이 세상에서 오욕락(五欲樂.세속적 욕망과 즐거움) 을 누리고 사는 것은 일시적인 행복이니라. "

 

수경은 벌써 아버지 성철스님의 말씀에 빠져 있었다.

 

"도를 깨치는 공부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면 되는 거라. "

 

수경은 그 자리에서 큰스님으로부터 '삼서근(麻三斤) ' 화두를 받았다.

큰스님의 선문답 몇 가지가 더 이어졌다.

수경은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

그제서야 성철스님이 웃는다.

 

"니가 10년 공부한 사람보다 더 낫다. "

 

수경이 내친 김에 "이제부터 학교에 가지 않고 화두 들고 참선만 하겠습니다" 라고 다짐했다.

성철스님의 반응이 의외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끝을 제대로 못맺으면 큰 일에는 성공을 못하는 거라. "

 

학업을 일단 마치라는 성철스님의 가르침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이미 마음은 아버지의 가르침에 두고 온 수경이다.

음악이나 체육시간에는 제일 뒷자리에 앉아 혼자 참선에 빠지곤 했다.

 

달라진 수경을 가장 유심히 본 사람은 할아버지(성철스님의 아버지) 였다.

할아버지가 몇 번 수경이를 불러 이것 저것 물어보더니 하루는 마음을 정리한 듯 나들이 계획을 발표했다.

 

"지가 올리는 없을 거고, 내가 가서 봐야제!"

 

이미 '철수좌' 로 도명(道名) 이 높은 아들을 찾아 먼길을 떠나겠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길눈이 밝은 하인을 앞세우고 천제굴로 향했다.

 

20여 년만에 아들을 만난 아버지의 첫마디는 "석가모니가 내 원수다" 였다고 한다.

불교에 아들을 뺏기고 동네 유림으로부터 배척당해온 세월에 대한 회한이 농축된 한마디였다.

 

그런 마음을 모르는 성철스님이 아니다.

그날 성철스님은 거듭 위로의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성철스님은 짧은 만남을 마감하고 돌아서는 아버지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아부지를 뵈옵고 옛날과 다름없이 건강하신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됩니다.

앞으로도 오래 오래 사실 것입니다. " .

 

성철스님의 위로와 인사를 받고 산청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조용히 낫을 찾아 들곤 경호강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동안 석가모니에게 복수하기위한 '물고기 대량살상용' 으로 쳐놓았던 그물을 손수 찢어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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