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을 모시면서 그 급한 성격을 이해하고 익숙해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행자.시찬 시절만 아니라, 나중에 원주(절의 살림을 책임지는 자리)의 소임을 맡아
10년의 세월을 같은 암자에서 살면서 큰스님 모시기의 노하우를 익혀나갔다.
행자.시찬 시절, 성철스님의 질문에 곧이 곧대로 대답했다가
사형(師兄.같은 스승에게 배운 스님 중 선배)들이 혼나는 것을 여러 차례 보면서부터
내가 개발한 것은 `모릅니다` 는 대답이다.
처음엔 나름대로 사형들의 입장을 고려해 조금씩 둘러대곤 했다.
그런데 큰스님이 자꾸만 캐물어오면 어느 순간 조금씩 둘러대던 말이 거짓말이 된다.
그 거짓말이 다시 문제거리가 된다.
순간적으로 이리 저리 둘러대다 보니 나 스스로 그 때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큰스님은 그 둘러대는 말을 다 기억한다.
"이놈아, 며칠전에 한 말인데 오늘 또 해!"
그럴 때마다 `아차` 하며 다시 둘러대야 한다.
큰스님께 둘러대려면 내가 더 똑똑하게 굴어야 하는데 그것이 잘 되질 않았다.
그렇게 꾸중을 들어가며 터득한 비법이 `모르겠심더` 다.
몇번을 거푸 모르겠다고 하니 성철스님이 답답한 듯 화를 냈다.
"야, 임마! 와 요새 와서 모르는 기 그리 많아졌노?"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스님께서 모르고 지나가는 편이 낫다는 판단에서 `모르겠심더` 를 연발하니
큰스님도 어쩌지 못했다.
성철스님을 모시며 배운 또 다른 노하우는 큰스님의 급한 성격에 맞춰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큰스님은 무슨 계획을 거창하게 세워 장황하게 보고하면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그리곤 다음날 아침 다시 불러서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렇고, 저렇고 하니
해서는 안되겠다. 없던 일로 해라" 고 말했다.
그러니 무슨 일을 성사시키려면 큰스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성철스님이라는 투수가 던지는 공을
홈런이나 3루타로 멋지게 때리려 하면 안된다.
그러다간 삼진 아웃되기 십상이다.
일단 단타 위주로 조금씩 큰스님의 마음을 얻어가야 한다.
일단 1루에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무슨 일이 있으면 미리 저녁에 장황하게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들어가서 "이런 일이 있는데 이렇게 하면 어떻겠심니꺼" 라고
그자리에서 바로 여쭤 대답을 얻으면 바로 시행해야 한다.
전날 밤 미리 설명하면 다음날 "하지 마라" 는 대답을 얻기 쉽고,
이런저런 계획을 자세히 보고하면 "세상 넓은 줄 모르고 깨춤 추지 말라" 는 훈계를 얻기 마련이다.
당시엔 "왜 큰스님은 이렇게 반대만 하시는가" 하는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절집 생활에 연륜이 쌓이면서 큰스님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경험에 비춰보면 스님들이 무엇을 한다고 벌이기는 벌이는데 그 뒷마무리가 부실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매사를 준비하고 준비해 차근차근 해나가야지,
계획만 잔뜩 세워 놓고 허풍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이 큰스님의 생각인 셈이다.
큰스님의 허락을 얻으려면 꼭 필요한 범위내에서 내실있게 준비해 보고해야만 했다.
언젠가 법정스님이
"성철스님은 저렇게 성격이 급하고 격하신데, 원택이는 성격이 느리고 느긋하네.
가만 보니 성철스님과 원택이 찰떡궁합 같네" 라고 한 말이 기억난다.
당시 "아이구, 찰떡궁합이 아니라 악연입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무서운 스님 만났는지 모르겠심더" 하며
파안대소하고 지나쳤지만 법정스님의 말이 지금도 가슴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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