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3,000배를 하면

敎當 2018. 7. 20. 13:33

성철스님의 가장 자상한 모습은 3천배를 마친 일반 신도의 인사를 받을 때에 볼 수 있다.

3천배를 마친 신도에게 '애 썼다' '수고 많았다' 는 등 격려를 아끼지 않을뿐 아니라

직접 쓴 법명과 화두, 그리고 직접 그린 원상(圓相) 까지 준다.

 

화두는 신도의 성격과 불심에 맞춰 주었는데, 대개 '삼서근(麻三斤) ' 을 많이 주었다.

말년에는 아예 삼서근의 내용을 간단히 풀어쓴 인쇄물을 준비해뒀다 주기도 했다 

원상, 즉 동그라미는 깨달음의 세계를 상징하는 그림.

처음도 끝도 없는 영원함과 완전한 깨달음을 상징하기에,

집으로 돌아간 신도가 벽에 붙여놓고 수시로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큰스님은 원상을 주면서 "집에 가서도 참선 잘하거래이" 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반대로 3천배를 다 못한 사람에겐 매몰찼다.

큰스님 앞에 서지도 못하게 했다.

혹시 앞에 나타나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죽어 썩어질 몸뚱아리에 그리 애착이 많으니, 니가 무슨 3천배를 할끼고?"

 

3천배를 못하고 큰스님의 꾸중을 듣고 절을 내려가는 신도들의 반응은 대개 두 가지로 나눠진다.

많은 경우 여러 불가피한 사정으로 3천배를 못해 애석한데, 구박까지 받으니 서럽다는 반응이다.

"다시는 백련암쪽은 쳐다보지도 않겠다" 는 반감을 표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 집에 가서 절하는 연습을 열심히 하고 다시 찾아와 3천배를 기어이 마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큰스님이 백련암 스님들에게 인자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저녁 무렵 안마를 받을 때이다.

가끔 큰스님이 불러 팔다리를 주물러 드릴 때면 무섭던 모습은 어딜 가고 자상한 노인의 모습이다.

 

이런 때면 이것 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큰스님이 알고 있는 지난 얘기들을 허물없이 하곤 했다.

그런 얘기중 지금도 기억에 생생할 정도로

큰스님이 자주, 그리고 힘주어 강조한 이야기는 '의리' 에 관한 것이었다.

이런 줄거리다.

 

'일본 식민지 시절, 세상살이가 생각할 수 없이 격변하던 때였다.

양반집에 종살이를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어찌어찌 독학해 고시에 합격했다.

나중엔 충청도 지사 자리에까지 오르게 됐다.

 

그런데 그 지사는 자신의 출세를 남들에게 앞세우고 자랑하지 않았다.

오히려 명절이 되면 꼭꼭 옛날 양반 어른을 찾아와 인사를 올렸다 

비천한 자신의 과거가 드러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 자신을 거두어준 주인 양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않았다는 것이다. '

 

큰스님이 얘기 말미에 항상 놓치지 않는 한마디.

 

"보통 사람이면 그래 했겠나?

몰락해 가는 양반, 찾아보나마나 마찬가지겠지만 그 사람은 그렇게 안했다.

사람은 그렇게 의리가 있는 대목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 "

 

큰스님께서 평생 살아오며 어떤 의리 없는 사람을 봤는지는 모르지만,

팔다리를 주무느라 정신이 없는 우리에게 "사람은 의리가 있어야 한다" 는 것을 거듭 강조하곤 했다.

그렇게 말하곤 우리들을 한번 죽 둘러보며 다시 한마디 한다.

 

"너거 놈들한테 의리를 강조하는 내가 글렀제! 안 그러나?"

 

큰스님이 기분이 좋은 때라 우리도 말대답을 빠트리지 않았다.

 

"안 그렇심더. 큰스님 말씀대로 의리있도록 노력하겠심더. "

 

우리는 사극에 나오는 신하들처럼 일렬로 앉아 머리를 조아린다.

그러면 큰스님은 기분 나쁘지 않다는 표정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이놈들아, 내가 어디 받을 데가 없어 너거들한테 의리를 받을라카나.

내가 아니고 너거들 앞으로 살면서 서로서로 의리를 지키고 화합하고 힘써 정진 잘하라는 말이지.

곰새끼들인 너거들한테 내가 무슨 의리 타령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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