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행자 상식 테스트

敎當 2018. 7. 17. 11:13

출가해 스님 되는 일에 어떤 일정한 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잘 모르기는 하지만 기독교 성직자의 경우

신학대학이나 대학원 같은 교육기관을 졸업하고 다시 일정한 과정을 이수하는 등의 절차가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들 기독교의 성직자 과정에 비춰

불교도 동국대학교를 졸업하거나 승가대학을 졸업해야 스님이 되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절집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출가할 때만 해도 학벌도 묻지 않고, 나이도 묻지 않고, 과거도 묻지 않았다.

 

그저 절에만 들어오면 머리 깎고 먹물옷을 입혀 주었다.

행자라는 수습과정을 일년쯤 거치면 스님으로 대접해 주었다 

그리고 스님이 되고 나서야

강원(講院.큰절의 교육기관) 이나 동국대학교.승가대학에 입학해 공부를 할 수 있다.

정규교육과정을 꼭 지켜야하는 것이 아니기에

어떤 스님들은 곧바로 선원을 찾아 참선수행에 들어가기도 한다.

 

내가 백련암으로 출가할 즈음 "성철스님은 대학 출신만 상좌로 삼는다" 는 말이 퍼져 있었다.

친구스님이 백련암으로 출가할 때 대불련(대학생 불교연합서클) 출신 너댓명이

한꺼번에 큰스님의 지도로 출가해 그런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행자생활과 시찬소임을 거칠 동안, 또는 그 이후에도 많은 행자들이 백련암을 오고 갔다.

당시 큰스님은 새로 절에 들어온 행자가 대학 졸업생이라 하면 꼭 전공을 물었다.

그리곤 넌지시 실력을 테스트 했다.

 

불문과를 졸업했다고 하면 어디서 불어책을 가져와선 아무 쪽이나 펼치보이면서 "해석해봐" 라고 요구했다 

또 독문과라고 하면 헷세인지 괴테인지의 글을 가져와 번역해보라고 하기도 했다.

일종의 즉석 시험이다.

만약에 당황해서 해석을 못 하고 떠듬거리면 영락없이 핀잔을 준다.

 

"야 이놈아, 니가 우째 대학 졸업 했노?"

 

얼떨결에 당한 행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무안하기 이를데 없다.

큰스님은 언제 그렇게 많은 분야를 두루 공부했는지,

각 전공마다 나름대로 행자를 당황케할만한 질문을 잘도 던졌다.

잘 대답하면 '당연한 것' 이고, 못하면 예의 그 핀잔이다.

나도 큰스님의 테스트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행자시절 어느날 큰스님이 불쑥 물어왔다.

 

"니 정치외교과 나왔다 했제?"

 

나는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기에 ", 그렇습니다" 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비스마르크가 평생 한번 왜, 언제 울었는지 말해봐라. "

 

앞이 캄캄했다.

비스마르크가 독일통일을 이룬 프러시아의 철혈재상이라고만 배웠지,

언제 울었는지 웃었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솔직하게 대답했다.

 

", 언제 울었는지 그것까지는 알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역시 핀잔이 돌아왔다. 자세한 설명과 함께.

 

"니도 별 수 없네. 내가 가르쳐주지.

프러시아가 독일을 통일한다꼬 그렇게 국민들을 쥐어짜고 했는데,

나중에 그 앞장을 섰던 비스마르크도 권력을 내놓고 고향으로 낙향하게 됐거든.

그 때 비스마르크가 가는 길에 국민들이 몰려나와 '비스마르크 만세' 라고 외쳤다는 거야.

그때까지 비스마르크는 자기는 국민들을 힘들게 했으니 응당 국민들이 자기를 미워할 줄 알았는데,

막상 낙향해 가는 자기를 그렇게 환영해 주니,

아무리 철심장인 비스마르크도 그만 그 모습에 감동하여 일생일대에 처음 눈물을 흘렸다고 안 하나. "

 

큰스님은 비스마르크의 성격, 설정한 목표를 향한 철혈같은 매진과

그 가운데 담겨진 사랑의 마음을 좋아했던 듯하다.

핀잔과 혀를 차는 소리로 설명은 마무리됐다.

 

"그것도 모르는 놈이 뭘 정치외교 공부했다고. 쯧쯧. "

 

큰스님은 제자들에게 참선을 강조하느라 "책 읽지말라" 고 했지만

스스로는 누구보다 책을 아끼고 즐겨 읽었다.

제대로 된 건물이 없던 백련암에 '장경각' 이란 서고를 별도로 만든 것도 큰스님의 책사랑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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