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첫 만남

敎當 2017. 5. 8. 15:52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인 대구에 머물던 19713.

 

하루는 절친한 친구가 찾아와서 "내일 해인사 백련암에 갔다오자" 고 말하는 것 아닌가.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갑자기 불교를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불교학생회에 가입한 이후 관련 서적을 간간이 보아 왔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전혀 불교에 관심이 없는 친구였다.

 "웬 해인사?" 하고 묻자 그 친구의 대답에서 처음으로 `성철` 이란 이름을 들었다.

 

"해인사 백련암에 내 대학동창이 스님이 돼 공부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친구를 만나고 싶어졌거든.

혼자 가기는 그렇고,

너는 불교 좋아하니까 거기 계시는 성철스님이라는 큰스님을 한번 친견도 할 겸해서 가자. "

 

성철스님이 누군지 모르니 심드렁했다.

 "혼자 다녀와라" 고 거절했는데,

그 친구가 평소와 다르게 막무가내로 "꼭 같이 가야한다" 고 졸랐다.

내키지 않았지만 다음날 해인사행 버스를 탔다.

 

당시 대구에서 해인사까지 가는 길은 비포장에다 폭도 좁아 3시간 이상은 걸렸다.

해인사 주차장에 도착해 오솔길보다 좁은 산길을 올라 백련암에 도착했다.

친구가 대학동창 스님을 찾아 반갑게 얘기를 하는데,

나와는 초면이라 대화에 끼지 못하고 쭈뼛거리고 있었다.

 

20, 30분쯤 지나 그 친구 스님이 "우리만 이야기하고 있으면 나중에 어른스님께 야단 맞을 것이니,

스님께 인사를 드리고 내려와서 다시 얘기하자" 고 말했다.

속으로 "그래 유명하다는 스님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호기심에 스님을 따라갔다.

큰스님 방 앞에 도착했다.

친구스님이 방문 앞에서 "접니다" 하고 기별을 드렸다.

 

", 들어오이라. "

 

카랑카랑한 음성이었다.

큰스님을 쳐다보니 무슨 전등불같이 형형한 눈빛으로 쏘아보시는게 아닌가.

그 눈빛만으로도 주눅이 들어 얼굴을 떨구고 말았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한참을 그렇게 쏘아보시더니 한마디 툭 던졌다.

 

"웬놈들이고. "

 

말투도 그렇지만 눈빛이 결코 범상치 않아 분위기가 딱딱하고 거칠었다.

친구 스님이 "제 친구들인데 오랜만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고 하자 분위기가 풀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주눅이 든 상태지만 겨우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큰스님 오늘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그 기념으로 저희에게 평생 지남(指南)이 될 좌우명을 한 말씀 주십시오. "

 

큰스님께서 예의 그 형형한 눈빛으로 쏘아보시더니 당돌한 주문에 흥미를 느낀다는 듯 다시 한마디 내뱉었다.

 

"그래, 그라먼 절돈 3천원 내놔라. "

 

주머니를 뒤져 3천원을 스님 앞에 내놓으며 "여기 있습니다" 고 호기 있게 말했다. 큰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놈아, 나는 그런 돈 필요 없다. 절돈 3천원 내놓으란 말이다. 절돈 3천원. "

 

황당했다.

절돈이라니.

백련암에서는 따로 돈을 찍어내나.

백련암에서 현금으로 바꾸는 절 돈이 따로 있는 모양이지.

별 생각을 다하며 멍청히 있는데, 친구 스님이 설명을 해준다.

큰스님이 말하는 절돈은 법당에 가 부처님께 절하는 것이라고.

3천원은 3천배란다.

3천배가 쉬운 일인가.

그동안 혼자 불교서적을 읽은 상식을 발휘해 거절하려고 이렇게 말했다.

 

"비구는 250, 비구니는 5백계, 보통 신도는 48계율을 지켜야 되는 줄 압니다만.

우리는 큰스님께 좌우명 한 말씀만 듣고자 하는데 절돈 3천원까지 낼 거야 없지 않겠습니까. "

 

실수였다.

큰스님이 쏘아보시더니 다시 꾸짖었다.

 

"니는 불교에 대해 뭐 쫌 아네(아는구나). 그런데 니는 공짜로 그저 묵자 하는 놈이구만. 안된다. 니는 절돈 만원 내놔라. "

 

1만번 절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오기가 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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