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도인과 선사

일우 선사

敎當 2014. 12. 17. 16:25

 

<깨달음의 자리> 마지막 편 점을 찍으러 충남 천안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승가에서 엉덩이에 뿔난 소처럼 괴팍스런 스님을 불러 괴각이라고 한다.

이 시대에 보기 드문 괴각 정원 스님(53)을 만나러, 그것도 불청객으로 가는 때문이다.

 

정원은 충남 천안 광덕면 매당리 태화산에 25년째 홀로 은거하며

선종의 결정판인 <벽암록>과 불법의 현묘한 도리를 밝힌 글을 모은

<현구집> <태화당 수세록> 등 방대한 양의 글을 썼다.

그가 쓴 책의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입소문만이 선객들 사이에 나도는 은둔의 수행자다.

 

그 정원은 일우 선사(1918~1989)에게 출가한 유일한 상좌다.

일우는 선승들조차 아는 이가 거의 없다.

방장이나 조실은 커녕 주지 살이 한 번 한 적이 없고 절 한 칸 책 한 권 법문 한 자 남긴 게 없다.

오직 그를 만났던 이들에게 소리 없이 불법의 인을 심어놓았을 뿐이다.

고교 시절 일우를 만나 발심하게 된 씨앗들이

바로 일년 내내 산문을 철폐하고 정진하는 조계종 특별종립선원 봉암사 선원장 정광 스님(63)

20여 년째 지리산 고지 상무주암에서 홀로 정진 중인 현기 스님(63) 그리고 정원 스님 등이다 

 

상무주암의 현기 스님은 일우에 대해 묻자 그 분을 어떻게 알았느냐며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평생 남 모르게 살다 가신 분이니 그렇게 두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더 이상 말문을 열지 않았다. 천하제일의 학식이었다고 할만함에도 열반 때 열반송을 묻는 이들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 입을 다문 일우였으니 그럴 만도 한 일이다.

 

정원도 그와 인연이 있는 선승을 통해 연락을 취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소식만을 전해주었다.

그렇지만 뜻이 있으니 길을 갈 밖에.....

태화산의 한 골짜기로 접어들어 끝까지 오르니 세속과는 다른 별천지다.

두레박처럼 둘러싼 산 가운데 아담한 대웅전과 서재와 잔디언덕과 연못이 한 폭의 그림이다.

평심사다 

 

난 우리 스님(일우)하곤 달라. 말 귀도 못 알아듣는 놈들한테 말은 해서 뭐해!

그의 첫마디였다.

그를 종종 찾던 한 여신자가 남편 사업이 부도나게 생겼는데 어쩌면 좋으냐는 물음에

망할 것은 빨리 망해야 한다고 했다는 정원에게 어찌 세간의 대접을 원할 것인가.

 

그의 불 같은 성정은 스승을 닮은 것이라고 한다.

정원이 일우를 만난 것은 18살 때였다.

불법을 알게 된 그가 도를 찾으러 노심초사하자 먼 친척이 일우를 찾아가 볼 것을 권했다.

일우는 부산 구포에서 다 쓰러져가는 초가의 방 한 칸에 머물고 있었다.

 

경남 진영에서 태어난 일우는 속리산 법주사 지산 스님에게 출가해 옛 고승들의 선어록을 파고 들었다.

일우는 앉아만 있는 것(좌선)을 병신 짓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러나 그는 석 달 간 아예 한 숨도 자지 않고 책을 볼만큼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정진력과 집중력을 지녔다 

일찍이 공부에 힘을 얻은 일우는 그 뒤부터는 산승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세속인도 아니었다.

그는 젊은 비구니와 살림을 차려 그처럼 세간의 초가에 머물렀다.

그런데도 돈을 줘도 쓸 줄 모를 만큼 불법 외엔 세속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기에

비구니에서 환속한 보살이 그 집에서 하숙을 쳐서 살림을 도맡았다.

일우는 세속에 나오기 전 절에 살면서도

출가 승려가 시줏밥을 얻어먹기 위해선 해야 할 기본적인 염불조차 못해

탁발 나가 밥도 얻어먹지 못했다고 한다.

 

머리도, 수염도, 손톱도 깍지않아, 답답한 보살과 제자들이 깎곤 했다.

그는 세수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씻지 않으면 때가 끼어 답답해서 어찌 사느냐고 물으면 일우는

먼지는 붙었다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답할 뿐이었다 

있던 제자도 도망갈 법한 그런 일우에 대해 정원은 한 번도 (스승으로서) 의심해 본적이 없고

그를 보고서야 이 세상에도현묘한 도가 실재함을 직감했다고 하니 숙연이 아닐 수 없다.

 

일우의 목소리는 호랑이가 포효하듯 우렁차 100미터 밖에서도 뚜렷이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일부 선승들만이 그를 알아보고 통도사, 송광사 등 대찰로 그를 초청해 법을 들었고

그의 초가를 찾아 법을 물었다.

당시 그와 당대에 알려진 고승들의 법문을 번갈아 들은 선승들은

양쪽을 유치원생과 대학원생 차이 정도로 비교하곤 했다.

 

그는 누군가 불법을 들으러 오면 하루고 이틀이고, 아예 잠도 자지 않고 법을 설했다.

그러면서도 불법을 벗어난 사담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정원이 사는 이 곳에 일우가 열반 전 한 번 온 적이 있었다.

비둘기호를 타고 10시간 동안 온 일우는 밤 새 한 잠도 안 자고 정원에게 법을 설한 뒤

아침에 공양(식사)을 들고 다시 역을 향해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한 번 말문이 터지니 오줌 쌀 틈조차 주지 않는다.

그가 쥐어준 무려 4천여 쪽에 이르는 저서 석 질을 짊어지고 다음에 또 만날 기약까지 하고 산문을 나서니

산문을 오를 때 무거웠던 마음은 어디로 간 것인가.

천근 같던 마음들도 일우의 몸에 붙은 한갓 먼지였던가......

하루를 살더라도 후회 없이 살아라.

 

'경전 > 도인과 선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효봉스님   (0) 2015.01.02
청소(靑昭) 스님 - 이 뭐꼬가 경계를 치고 나가는 화두  (0) 2014.12.23
혼해선사   (0) 2014.12.09
백봉선사  (0) 2014.11.25
철우선사   (0) 2014.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