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도인과 선사

석봉선사

敎當 2014. 7. 4. 15:59

 

충남 아산 영인산 자락으로 한 노승을 찾아 나섰다.

세상에 드러내기를 전혀 원치 않는 그를 어렵사리 만나는 감회에 젖어 산길을 오르니 막다른 곳이다.

토굴 같은 집이 외로이 서 있다.

노승이 산에서 주워 까놓은 것을 보이는 쥐밤들이 널린 방에 한 노승이 앉아있다.

혜철 스님(81)이다.

80대 노구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허리가 꼿꼿하다.

이것이 수행자의 힘인가?

강하되, 위협적이지 않다.

 

그를 마주하자마자 칠흑 같은 어둠이 방안을 덮는다.

그러나 그는 불을 켤 생각조차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한 발을 옮길 수 없는 칠흑 같은 밤 중에도 계룡산 숲 속을 뛰어다녔다는 그다.

어둠 속에서 호랑이 불빛 처럼 빛나는 혜철의 안광이

이 세상에 단 한차례도 드러난 적이 없던 그의 스승 석봉 선사(1890~1971)의 삶을 토해낸다.

 

석봉은 무섭게 생긴 인물이었다.

머리는 까지고 입술은 튀어나오고 눈빛은 상대의 심장을 찌르듯해 마치 사천왕 같았다.

전남 곡성 겸면에서 태어난 석봉은 7살 때 몸이 아파 7살에 곡성 관음사에 맡겨져 기도를 시작했고,

그것이 출가길이 되었다.

불경을 익히기 위해 지리산 화엄사로 옮겨간 석봉은

구례중학교를 다니면서 사천왕 같은 얼굴 값을 하기 시작했다.

유도 3단이던 그는 우리 밖을 나온 산짐승처럼 구례시내를 주먹으로 휩쓸고 다녔다.

보다 못한 구례군수가 화엄사 주지에게 그를 산문 밖에 내보지 말도록 편지를 쓰자

석봉은 네가 군수면 군수지, 왜 남의 발까지 묶으려고 하느냐며 군청을 뒤짚어놓았다.

 

그가 38살에 참선을 하겠다며 만행에 나섰다.

금강산 마하연에서 1년 간 참선 정진한 그는 금강산에서 마가목 지팡이를 만들어 짚고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선방으로 도반과 함께 갔다.

그런데 하루 밤 자고나니 지팡이가 없었다.

화가 난 석봉은 오늘 밤 안으로 지팡이를 가져다놓지 않으면 모두 가만두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다시 하룻밤을 자고 나자 지팡이는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정작 상원사 선방에선 그의 도반의 방부(살기를 요청)는 받아주면서

그의 방부는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

참선길이 막히게 된 그는 왜 방부를 받아주지않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자 함께 온 도반이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느냐

스님이 화를 내면 꼭 사천왕 같아서 다른 스님들이 무서워 함께 살기를 꺼린다고 말해주었다.

걸핏하면 화를 내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남에게 위협이라는 얘기였다.

 

석봉은 그 순간 금강산에서 들은 얘기가 떠올랐다.

한 스님이 마하연 돈도암에서 있는데,

마당에 있던 뱀이 부엌으로 들어가 타고 남은 재를 묻혀 자기 몸으로 마당에 글을 썼다.

자신은 원래 홍도 스님이었는데 아파서 누워 있다가 바람에 문이 닫히는 바람에

발이 끼었다고 단 한 번 화를 낸 과보로 이렇게 뱀의 몸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 길로 석봉은 상원사 조실 한암 선사 앞에 가 3배를 올렸다 

진심()을 놓겠습니다. 방부를 받아주십시요.”

진정 진심을 놓을 수 있겠는가?”

저는 한다면 합니다.” 

 

그 순간 사천왕 처럼 무섭던 석봉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변한 그의 모습이 믿기지 않던 선객들이

처음엔 시험 삼아 욕을 해도 빙그레 웃을 뿐이었고 나중엔 발로 차도 웃을 뿐이었다.

그 뒤 열반할 때까지 40여년 간 그는 꼭 하지 않으면 안 될 말 외엔 입을 여는 법도 없었다.

사실상 40여년의 묵언이었다 

혜철이 9년 간 모시고 산 계룡산 신흥암에서도 석봉의 말 없는 정진은 한결같았다.

신흥암은 천연바위 속에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있어 가끔씩 방광한다는 천진보탑으로 유명한 곳이다.

신흥암에서 방광하는 것은 천진보탑만이 아니었다.

전기불도 없던 시절 신흥암에서 기도하던 불자들은 칠흑 같은 밤

석봉의 방에서 방광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말 없던 석봉이 남긴 유일한 문답이 있다.

그는 누가 가장 센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러면 사람들은 왕이나 천하장사나 호랑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그는 참는 장사를 당할 자가 없다인욕(참음)이 제일 강한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석봉의 ‘5가지 제일법문이다.

그는 이어 무엇이 가장 이로운 것이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돈이나 명예나 지위를 답했다.

그러나 그는 무병이 이롭다고 했다.

또 그는 이어 제일 부자는 지족(자족함을 앎)한 사람이며,

제일 친한 사람은 부모 형제나 자신의 잘못을 부추기는 이가 아니라 잘못을 정확히 지적해주는 친구이고,

 “제일 즐거움은 도를 깨쳐 알고 열반에 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석봉은 3일 간 스스로 곡기를 끊고 앉은 채 열반했다.

충남 보령 선림사에서 보관중인 그의 좌탈열반 사진은 마치 살아 있는 듯하다.

석봉의 도반인 도봉산 욕쟁이 선사 춘성은 석봉의 앉은 법구 앞에서 좌선을 하고 나서는

 일체 집착을 벗어나 나로서도 대답할 수 없는 법을 설하고 있다3배를 올렸다.

석봉의 법구를 다비하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무려 사리가 한말도 넘게 쏟아진 것이다.

사리는 그의 뜻에 따라 산에 뿌려졌고 어떤 탑도 세워지지 않았다.

 

혜철의 방에서도 긴 침묵이 흐른다.

어떻게 화가 그런 과보를 받는지 왜 많은 중생을 두고 홀로 산에 사는 지 질문도 사라져 버렸다.

계룡산 아래서 사 간 감을 함께 나누는 사이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는 가을 바람이 답할 뿐이다.

가을 바람에 감은 이렇게 익었고 온 산하가 붉게 물들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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