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아미타경

십념 왕생(十念往生)

敎當 2012. 8. 30. 12:16

(七) 십념 왕생(十念往生)의 의의(意義)

어떤 이가 묻기를

경에는 중생의 지은 업(業)이 저울과 같아서 무거운 데로 먼저 끌린다 하였는데

중생들이 오늘날까지 나쁜 짓을 짓지 아니한 적이 없거늘

어떻게 임종 시의 十念염불로 곧 왕생 할 수 있겠는가.

만일 十念으로 왕생한다면 무거운 데로 끌린다는 말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였더니

그것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은 나쁜 업(業)이 중하고

十念의 선(善)이 경(輕)하다 하거니와

十念으로 왕생되는 것은 곧 마음에 있고 연(緣 )에 있으며 결정(決定)에 있는 것이므로

시간의 오래고 짧음이나 일의 많고 적은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가)마음에 있다는 것은

사람이 죄를 지을 때에는 허망(虛妄)하고 전도(顚倒)된 마음으로 짓는 것이요

이 十念은 선지식(善知識)의 안위(安慰)에 의하여

실상법(實相法)을 듣고 염불하는 것이므로

하나는 허망하고 하나는 진실하거늘 어찌 대비할 수 있으랴

千념이나 묵은 어두운 방도 일찰나(一刹那)의 광명으로 밝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유일마니보경(遺一摩尼寶經)에는

[중생이 비록 수천거억만겁(數千巨億萬劫)을 애욕중(愛慾中)에서 죄에 덮여 있더라도

만일 불경을 듣고 一念이 선(善)하면 죄가 사라져 없어진다]하셨으니

이것이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나)연(緣)에 있다는 것은

사람이 죄를 지을 때에는

망상(妄想)에 의하고 또 번뇌(煩惱)과보(果報)중생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나

이 十念은 무상신심(無上信心)에 의하고

또 아미타불의 진실 청정한 한량없는 공덕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니

마치 사람이 독(毒 )한 화살을 맞아 골육(骨肉)이 깨어져 상하였더라도

멸제약고성(滅除藥鼓聲)을 들으면 화살이 나오고 독이 제거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연(緣)에 있는 것이다.

 

릉엄경[楞嚴經)]에

[비유하면 한약이 있으니 이름이 멸제(滅除)라

만약 전쟁할 때에 이 약을 북에 바르면

그 북소리를 듣는 이는 화살이 빠지고 독이 제거되는 것이니

보살마하살(菩薩摩?薩)도 이와 같이 수릉엄삼매(首楞嚴三昧)에 머무르면

그 이름을 듣는 이가 삼독(三毒)의 화살이 저절로 빠져 나온다]하였다.

 

(다)결정(決定)에 있다는 것은

사람이 죄를 지을 때에는 유후심(有後心) 유간심(有間心)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요

이 十念은 무후심(無後心) 무간심(無間心)에 의하여 생기는 것이니

이것이 결정에 있는 것이다

 

[지도론(智度論)]에는 일체 중생이 임종 시에

죽는 고(苦)가 매우 절박하여 대단히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므로

이때에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대용맹(大勇猛)을 발하여

마음과 마음이 계속하여 끊어지지 않으면

이것이 증상선근(增上善根)이 되어 곧 왕생케 되는 것이다

마치 사람이 적(敵)을 대하여

진(陣)을 쳐부술 때에 평생에 있는 힘을 다 쓰는 것 같이

이 十念의 선근(善根)도 그러한 것이고

또 임종 시에 一念의 사견증상악심(邪見增上惡心)이 생기면

능히 삼계(三界)의 복(福)을 기우려서 곧 악도(惡途)에 들어가게 된다]하였다. [安樂集]

 

임종 시의 염불하는 마음 밖에 후심(後心)이 없고

후심이 없으면 딴 생각이 섞이지 않으므로

임종 시에는 무후(無後)무간(無間)의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맹렬하고 날카로운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고

평상시의 악업(惡業)은 유후(有後)유간(有間)의 견고하지 못하고 흔들리며

맹렬하지 못하고 날카롭지 못한 마음으로 행하는 것이다.

十念에 왕생하는 것은

마음에 있고

경계(境界)에 있고

정(淨)에 있는 것이다.

 

(가) 마음에 있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은 허망심(虛妄心 )이요, 염불하는 것은 진실심(眞實心)이니

진실로서 허망(虛妄)을 떨어버리는 것이 마치 千년이나 된 어두운 방에

아침 해의 밝은 빛을 막지 못하는 것 같은 것이다.

(나) 경계(境界)에 있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은 전도경계(顚倒境界)에 연(緣)한 것이요

염불은 뛰어나게 기묘한 공덕에 연한 것이니

진정(眞正)으로써 허위(虛僞)를 여의는 것이다.

 

(다) 정(淨)에 있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은 염의(染意)요, 염불하는 것은 정심(淨心)이니

정심이 염의를 이기는 것이

마치 동자(童子)의 칼이 능히 천장(千丈)의 노끈을 끊으며

작은 불이 능히 萬속(束)의 땔 나무를 태우는 것 같은 것이다.

 

[문]중생의 지은 죄업(罪業)이 산같이 쌓이었는데

어떻게 十念으로 그 죄업을 멸(滅)할 수 있겠는가.

비록 百萬念을 하더라도 그 많은 죄업을 다 없앨 수 없거늘

어떻게 죄업을 다 없애지 못하고 정토에 왕생하겠는가.

이에 대하여 다음의 세 가지 뜻이 있다.

 

(-) 그 악업을 멸하지 아니하더라도

정토에 왕생할 이는 임종 시에 정념(正念)이 앞에 나타나

능히 시초 없는 이래로 또는 일생 이래의 지은 선업을 이끌어

서로 도와서 왕생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명호(名號)는 통틀어 만덕(萬德)을 이룬 것이니

일념염불(一念念佛)하는 이는 즉 一念중에 통틀어 만덕을 염하는 것이다.

 

(三) 시초 없는 이래의 악업은 망상(妄想)으로 지은 것이니

어두움과 같고 염불공덕은 진심으로 생기는 것이니 태양과 같다.

태양이 나오면 온갖 어두운 것이 없어지듯이

진심이 잠깐 일어나면 망심(妄心) 이 제하여지는 것이므로

임종시에 十念을 성취하면 반드시 왕생하게 되는 것이다.

 

[문]평시에 약간 염불하던 사람이라도

임종 시에 十念으로 왕생한다고 반드시 때를 정해 약속하기 어렵거늘

하물며 평시에 염불하지 않던 사람이

어떻게 임종 시의 十念으로 왕생할 수 있겠는가.

 

(답)약간 염불이라는 것은

일심으로 계속 염불하지 아니하고 매일 몇 번씩 염불함을 말하는 것이니

이렇게 염불하는 사람은 염불하지 아니한 이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약간 염불한 사람이거나 염불하지 아니한 사람이거나

임종 때에는 짧은 시간의 심력(心力)이 맹렬한 까닭에

十念으로 왕생할 수 있으니 다음 세 가지 뜻이 있다.

 

(-) 짧은 시간의 심력이 능히 종신(終身)토록 악 지은 사람을 이기는 것이니

비록 짧은 시간이라 하더라도 그 힘이 맹렬하여

이 마음의 맹렬한 결심이 곧 대심(大心)이며

몸을 버리는 일이 급하기가

마치 전쟁터에 들어 간 사람이 신명(身命)을 아끼지 아니함과 같은 것이다.

 

(=) 혹 승(乘)이 급하고 계(戒)가 더디더라도

임종 시에 염불을 권하면 곧 신심(信心)이 생기고

비록 현세(現世)수행(修行)하지 않았더라도 역시 숙세(宿世)의 선업(善業)이 강하므로

임종 시에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서 十念에 성공하는 것이다.

 

(三)염불 할 때에 반드시 깊은 후회가 있어서 자신의 온 정력을 다하는 마음과

부처님의 원력(願力)으로 얻은 이 十念이 능히 百千萬念 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經)에 말씀하시기를

[일체 중생이 아미타불의 원력에 지지(支持)되어 세세(世世)에 놓지 아니하시니

이 뜻이 있으므로 부처님의 대원해(大願海) 중에서 그 이름을 한 번 일컬으면

능히 八十億 겁 생사 중죄를 멸하고 곧 부처님을 따라서 왕생한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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