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2만 1천배 엄명

敎當 2017. 5. 23. 13:36

성철스님과 약속한 일주일 기한을 며칠 넘기고 백련암에 도착한 날,

먼저 큰스님에게 절을 올렸다.

 

"오긴 왔구만. 그래도 약속은 지킨 셈이 됐네. "

 

큰스님은 뒤늦게 온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곧바로 엄명이 떨어졌다.

 

"내일부터 일주일 동안 매일 3천배 기도를 하거래이.

새벽 예불하고 나서 천배, 아침 공양하고 천배, 점심 공양하고 천배.

그렇게 매일 3천배 기도를 일주일 동안 다 하고 나서 보자. "

  

1만배를 제대로 채우지도 못하고 기진맥진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일주일 동안 21천배를 어떻게 하란 말인가.

속으로 "절에 들어와서 머리 깎으면 그만이지. 또 무슨 절을 그렇게 많이 하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출가를 결심한 마음을 바꿀 수는 없다.

"" 하고 물러나와 원주스님(절의 살림살이를 책임진 스님) 을 따라 객실로 물러나왔다.

21천배를 마쳐야 삭발을 하고,

스님이 되기위한 예비 첫단계인 '행자(行者) ' 가 된다고 한다.

 

19721월 중순.

한겨울 산중엔 밤낮 없이 칼바람이 불어댔다.

그 중에서도 새벽 3시 기상시간의 삭풍은 견디기 힘들었다.

 

일어나자마자 차관(茶罐.찻물을 달이는 주전자 모양 그릇) 에 물을 담아

영자당(影子堂) 에 있는 달기(청정수를 담는 그릇) 에 물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다 

어찌나 추웠던지 절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살얼음이 생기고,

절을 마칠 무렵이면 물이 꽁꽁 얼면서 터져 부풀어 올랐다.

 

그런 엄동설한에, 그것도 세속에선 한창 단잠에 빠져 있을 새벽시간에 절을 하려니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약속대로 매일 3천배씩 하기를 사흘

온몸의 근육이 아파 움직이기 힘들었다.

결리지 않는 곳이 없고, 손과 발은 푸르뎅뎅해졌다.

저녁무렵이 되자 온갖 상념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백련암으로 출가했다간 평생 절만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힘든 절을 계속하다가는 사람 죽어나가게 생겼구만.....,.

차라리 세상에 나가 그 정성으로 열심히 살면 크게 출세할 수 있겠다. "

 

나를 가장 섭섭하게 만든 사람은 바로 성철스님이었다.

"중 되라" 고 할 때는 그렇게 자상해 보이던 큰스님이었는데 완전히 달라졌다.

절을 하고서 다리를 풀려고 마당을 거닐고 있던 중 큰스님과 마주쳤는데

"언제 보았나" 는 식으로 눈길 한번 주지 않는 것이었다.

잠들기 직전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에이, 내일 아침 도망가 버리자. "

 

희한한 일이다.

그날 꿈속에서 눈썹이 허연 노스님 7~8명이 나타났다.

노스님들이 한사람씩 자신들을 소개하는데, 하나같이 불교사() 에 쟁쟁한 선사들이었다 

그리고 하나같이 "도망가지 말고, 기도 끝내고 중노릇 잘 해라" 고 당부하는 것이 아닌가.

 

화들짝 놀라 잠을 깼다.

"도망갈 생각을 하니까 별 이상한 꿈도 다 꾼다" 며 잠시 앉았다가 다시 잠들었다.

평소처럼 일어나 새벽 기도를 마치고 아침 공양도 마쳤다.

 

"도망갈 때는 가더라도 밥 먹은 큰 방 청소나 해주고 가야지" 하는 생각에서 물걸레를 들고 방바닥을 밀고 있었다.

갑자기 큰스님이 방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이놈아, 도망가야지. 와 아직 도망 안가고 여기 있노?"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속내를 들켰으니 무안하기도 했다.

뭐라 달리 빠져나갈 말이 없었다.

 

"스님, 절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정말로 도망치려고 짐을 싸 두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이렇게 훤히 알고 계시니...., 도망갈 생각을 접고 열심히 절하겠습니다. "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는데 큰스님이 빙긋이 웃는다 

"절하는 사람 다 힘들지. 힘 안드는 사람이 어데 있겠노. 그래도 열심히 절해 기도를 마치거래이. "

 

다시 영자당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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