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수행자들이
죽음을 맞는 모습이란 참으로 아름답고 놀랍기까지 하다.
그들은 죽은 뒤의 세계를 위해 어떤 기도도 하지 않으며
어떤 신의 이름도 부르지 않는다.
다만 나고 죽음이 없는 삶의 진실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불교의 이 독특하고 아름다운 죽음의 전통은
겨울 밤하늘의 별처럼 찬란하다
사람에 따라 앉아서 가기도 하고, 서서 가기도 했으며
거꾸로 서서 가기도 하고, 걸어가면서 가기도 했다.
조동종을 세운 동산 양개는 세상을 떠날 때가 되자
목욕을 하고 머리를 깍고 가사와 장삼을 갖춰 입고
종을 울려 대중을 모았다.
동산은 모인 대중에게 마지막 법문과 작별 인사를 한 뒤
산 사람처럼 법상 위에 단정히 앉아서 그대로 열반에 들었다.
동산이 생각 밖으로 빨리 세상을 떠나자
그를 따르던 많은 대중들은 커다란 슬픔에 빠졌다.
동산이 열반에 든 지 몇 시간이 지나자
온 산중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열반에 든 동산이 다시 눈을 뜨더니 대중에게 손을 들어
울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마음을 물건에 두지 않는 것이 출가자의 참 수행이다.
어찌 슬퍼하고 안타까워할 일이 있겠는가."
대중은 스승의 지시에 따라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참회하는 재를 크게 올렸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스승 곁에 더 있고 싶은 대중들은
재를 결코 서둘러 치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재를 준비하는 기간이 이레 동안으로 길어진 것이다.
재를 마치자 동산은 대중들이 정성껏 만든 음식을 함께 들었다.
대중들이 다시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고 흐느끼자
"스님네들이 어찌 이다지 못났는가. 큰 길을 떠나는데
어째서 이렇게 소란스러운가" 라고 말씀하신 다음
다시 단정히 앉아 열반에 들었다.
청담이 화엄사를 떠난 다음 해 여름
수월은 여름 내내 산에 올라가 나무를 했다.
그리고 그 나무를 지게로 져다가
화엄사 들목에 있는 밭에 정성들여 쌓았다.
그 해가 무진년 여름
서기로는 1928년 수월의 나이 일흔넷이 되던 해였다.
수월의 모습은 제 나이보다도 훨씬 더 들어 보였다고 한다.
누구보다도 못 먹고 못 입고, 누구보다도 잠을 적게 자고,
누구보다도 많은 일을 한 수월이요,
일생을 쉴틈 없이 일만 한 몸이니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뼈와 가죽만 남은 수월.
그는 따가운 대륙의 여름 햇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채 나는 두눈을 번쩍이며 말없이 나무만 했다.
그때도 대중은 대여섯이 모여 살았는데
수월이 나무를 해 모으는 속뜻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밤이 되면 배나무 곁에 있는 삼매바위에 앉아
날이 밝도록 깊은 삼매에 들었다.
호랑이들만이 무엇을 짐작 했는지 밤이 다 가도록
수월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수월은 무진년 여름 안거를 마치고 세상을 떠난다.
나이 들고 기력이 다하니 이제는 더 할일이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닌게 아니라 수월의 힘이 달리기 시작한 지도 좀 되었다.
몇 해 전부터인가, 그 윤기나고 야무지게 삼던 짚신도
모양 내지 않고 대충 삼았고 나무 하고 밭을 일구는 틈틈이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수월이 열반에 든 그 해는 나라 안팎에서 나라를 되찾아
백성들을 해방시키려고 일제와 맞서 싸우던
많은 지사들과 사회주의자들이 큰 수난을 당한 해이기도 하다.
중국 북벌군은 제남에서 일제와 싸움을 벌였고
일제는 만주를 집어먹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무진년 여름 결재는 양력으로 6월 2일부터 8월 29일 까지였다.
수월은 여느 해와 달리 이번 철에는 결재를 며칠 앞두고
나무하기를 그만 두었다.
그리고는 결재기간 내내 모처럼 대중들과 함께 자리를 깔고 앉았다.
해제 다음날 점심공양을 끝내고 대중들과 함께
차 한잔을 마신 수월은 대중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밖으로 나갔다고 한다.
"나 개울에 가서 몸 좀 씻을 텨"
화엄사 왼쪽으로 흐르는 개울물은 맑고 수량도 많아
화엄사 대중들이 아주 요긴하게 쓰고 있었다.
위쪽 개울물은 먹는 물로, 아래쪽 물은 빨래나 목욕하는 물로 썼다.
일제가 전쟁 기지를 만드느라고 산에 나무를 없애는 바람에
요즘은 물이 그다지 많지 않지만 그때는 물도 많고 목욕할 때
몸을 가려줄 나무도 충분했을 것이다.
수월이 방을 나선 뒤에 대중들은
모처럼 맞은 해제 풍김새에 젖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이는 그대로 머물러 있겠다고 했고
어떤 이는 며칠 뒤 두만강을 건너 조선으로 들어 가겠다고 했다.
한참 동안 이렇게 시간을 보낸 대중들은
저마다 볼일을 보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개울가로 빨래하러 간 스님이 부리나케 달려와
숨이 넘어가는 목소리로 대중 스님들을 불러 모았다.
수월이 개울가에 앉아 열반에 들었다는 것이다.
어안이 벙벙해진 대중들은 우루루 개울가로 몰려갔다.
그리고 그들은 차마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수월의 모습 앞에서
몸과 마음이 굳어버렸다.
목욕을 마친 수월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개울가 바위 위에 단정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잘 접어서 갠 바지 저고리와
새로 삼은 짚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자연스런 결가부좌, 쭉 편 허리와 가슴, 바로 세운 머리,
깊이 감은 눈과 야물게 다문 두 입술,
그리고 배꼽 아래 신비스런 선을 타고 내려와 함께 포개져 있는
두 손과 불꽃 튀기듯 맞닿아 있는 두 엄지 손가락,
그것은 누가 보아도 죽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였다.
개울물에 몸을 씻은, 번뇌 없는 노스님이 잠시 바위에 앉아
늦여름의 매미 소리를 즐기고 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육체는 내 것이 아니요
몸과 마음 또한 빈 것이네
흰 칼로 목을 치니
오히려 봄바람을 베는 것 같구나.......승조(384~414) 임종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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