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만 해!
중생은 이 몸뚱이를 중심에 두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불쑥불쑥 일어나는 번뇌망상을 좇아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몸이 고달파 공부를 멈추고 번뇌 때문에 공부를 멈춥니다.
몸 편한 것을 찾아 일어나는 번뇌를 좇아 다른 것에 마음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를 당하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흔들리면 공부가 되지 않고 공부가 되지 않으니 마음이 답답해 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치다가 염불, 참선, 주력 등의 공부를 포기해 버립니다.
스스로의 무능뿐만이 아니라 그 공부 자체를 불신하면서....
그런데 이렇게 흔들리고 답답해질 때 선지식을 찾아 뵙고 방법을 여쭈면 참으로 의외의 답을 주십니다.
"그렇게만 해!"
이제까지 했던 것처럼 그렇게 계속하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나 또한 '그렇게만 하라'는 말 외에 따로 이야기해 줄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만 계속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만 해!
우리 중생들은 무엇인가를 조각내는 버릇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자꾸만 분별하고 갈라놓습니다.
'관세음보살'을 부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나'와 대상인 관세음보살을 갈라놓습니다.
그리고 대상인 관세음보살을 나름대로 평가하고 매달리고 또 소원이 성취되지 않을까 불안해 합니다.
집중이 되지 않을수록 자꾸만 조각을 내는 것입니다.
병은 바로 이것입니다.
조각을 내고 분별을 하고 갈라놓는 것이 병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이병이 치유되는가?
그냥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조각내지 말고, 분별하지 않고 '그렇게만'하다가 보면, 어느 날 문득 삼매를 체험하게 됩니다.
'지장보살'을 불러도 좋고 '옴 마니 반메훔'을 해도 좋습니다.
불교의 많은 공부방법이나 기도방법 가운데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여
꾸준히 물 흘러가듯 계속 해보십시오.
의식적으로 그것을 하고 있는 동안은 체험을 하지 못하지만,
의식적으로 자꾸 하여 습관이 되고 완전히 익으면 저절로 제3의 세계를 체험하게 됩니다.
단, 의식적으로 제3의 세계를 체험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관세음보살이든 화두든 물 흐르듯이 꾸준히 할 수 있게 되면
생각도 의식도 없는 그때 저절로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은 제 3의 세계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그렇게만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안 된다, 된다'를 따지지 말고 꾸준히만 계속하면 모든 분별을 떠난 한 덩어리의 삼매를 이루어
반드시 대자재의 경지를 체험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염불을 하든 화두를 들든 주력을 하든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부지런히 몰아 붙여야 합니다.
그렇게 의식적으로 부지런히 집중을 하다보면 몸의 고달픔도 잊고 온 생각이 거기에 집중이 되어
'잠이 온다, 낮이다, 밤이다'도 잊게됩니다.
이렇게 그 공부와 한 덩어리가 되면 동요됨도 흔들림도 없는 제3의 세계를 반드시 체험하게 됩니다.
이때 주의할 점은 제3국의 세계를 조금 체험하였다고 하여 그 공부를 그쳐버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쳐버리면 속아 넘어가서 '도로 아미타불'이 되는 수가 허다합니다.
그러므로 탐심, 진심, 치심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에게 맞는 것과 거슬리는 것 등, 그 어떠한 것에도 무심(無心)해 질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불교는 아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염불도 참선도 주력도 기도도 경전공부도 부지런히 익혀서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합니다.
혓바닥으로 외치는 '불'과 타오르는 불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 타오르는 불과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합니다.
부디 입으로만 '불'을 외치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는 한 해를 만들어 보십시오.
쪼개고 나누는 삶이 아니라 제3의 세계를 체험하는 한 해로 만들어 보십시오.
일상의 소소한 고민, 소소한 고통, 소소한 일에 흔들리지 말고,
대범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한 가지 공부를 해나가십시오,
그렇게만 하면 모든 괴로움에서 해탈하는 세계, 곧 극락을 체험할 수 있게됩니다.
흔들리지 않고 물 흐르듯이 이어가는 것!
이것이 공부성취의 비결이라는 것을 꼭 명심하시고,
무량겁의 행복을 쌓는 을미년을 맞이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나무 마하반야 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