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대신심(大信心)의 매질

敎當 2019. 1. 4. 11:44

수경(불필스님) 은 친구 옥자와 함께 대구에서 성전암까지 50리 길을 걸어 성철스님을 찾아갔다.

무사히 안거를 마쳤음을 보고하는 자리였다.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공부가 마음처럼 잘 되질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철스님이 형형한 눈을 부라리며 호통쳤다.

 

"건방지게! 니 언제 공부해 봤다고 공부가 되니 안된니 소리를 하노"

 

수행정진, 즉 참선공부란

정말 꿈에서까지 화두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정도가 되더라도 제대로 공부한다고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수경은 '공부' 의 경지를 가늠치 못하게 하는 성철스님의 말을 들으며 말문이 턱 막혔다고 한다.

수경도 나름대로 자지 않고 화두 일념이 되도록 노력했는데

성철스님이 말하는 경지에 이르자면 어림도 없었다.

 

"공부를 제대로 이루기 전에 공부란 이름도 붙일 수 없는 거라. "

 

당시 성철스님이 이런 참선수행의 어려움을 강조하시면서

자주 하던 말씀을 친필로 써 가까운 사람에게 직접 나눠주곤 했다.

대체로 이런 내용이다.

 

'하루에 적어도 20시간 이상 화두가 한결같이 들려야만 비로소 화두 공부를 조금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화두천(話頭天) 이라고 한다.

하루 중 아무리 바쁘고 바쁠 때라도 화두가 끊어지지 않고

꿈 속에서도 맑고 밝아 항시 한결같아

잠이 아주 깊이 들어 문득 막연하면 다생겁으로 내려오는 생사고(生死苦) 를 어떻게 하리오. '

 

(日間浩浩常作主 夢中明明恒如一 正睡著兮便漠然 塵劫生死苦奈何)

 

화두를 들고 수행해 본 사람이라면 이같은 성철스님의 글을 보면서

스스로의 수행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점검할 수 있을 것이다.

 

수경과 옥자는 당시 '증도가(證道歌) ' '십현시(十玄詩) ' 같은 문장들을 전부 외웠다.

그런 도인들의 글을 외면 그들의 호호탕탕한 기상과 풍채가 느껴져 정말 신심이 났다고 한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했지만 성철스님 앞에만 서면 항상 긴장되기 마련이다.

조금만 대답을 잘못해도 언제 어떻게 벼락이 떨어지고 쫓겨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호랑이 눈같이 불을 뿜는 듯한 큰스님의 눈빛을 보면 화두 공부 이외 다른 아무 말도 붙일 수 없었다.

 

그래서 여름이나 겨울 안거를 마치고 보고를 위해 성전암에 들를 때마다 쫓겨나기 일쑤였다.

옥자와 수경 중 하나가 대답을 잘못해도 같이 쫓겨나야 했다 

언젠가 비오는 날이었는데

성철스님 불호령을 내리면서 갑자기 들고 있던 우산으로 내려치는 바람에

꼼짝없이 온몸에 멍들게 맞은 적도 있었다 

수경은 눈치 빠르게 도망가는데 옥자는 행동이 느린 탓에 자주 맞았다.

비오던 날은 수경이 옥자에게 미안해 함께 서 있다가 사정없이 맞고 같이 쫓겨났다.

 

여름엔 덜하지만 겨울철엔 쫓겨나면 정말 망막했다고 한다.

동안거를 마치고 보고차 왔던 날이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데 성철스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인자 이것들 절에 놔두서 아무 소용없데이. 속가 집으로 내쫓아 버리야제. "

 

수경와 옥자는 영문도 모른 채 겁에 질려 도망쳤다가 다음날 새벽 예불 시간에 암자를 빠져 나왔다.

전날 하루 종일 밥도 못 먹고 성전암까지 걸어왔는데

오자마자 "집으로 쫓아 보낸다" 고 하시는 것이었다.

 

어찌나 배가 고픈지 부엌에 들어가 솔잎 속에 묻어놓은 당근을 몇 뿌리 꺼냈다.

() 에 몇 번 닦아 먹고서는 힘을 내 새벽에 줄행랑을 친 것이다 

날이 밝아 집에 보내려고 행자(천제스님) 가 수경 일행을 찾으니

사람은 간 곳 없고 눈 위에 뱉어놓은 당근 껍질만 널부러져 있었다.

 

그후 다시 천제스님은 수경과 옥자를 보면

"산돼지도 큰스님 잡수시라고 먹지 않는데 행자들이 그 귀한 당근을 훔쳐먹었다" 며 놀려대곤 했다.

 

인정이 메마른 성전암.

수경은 그런 박대를 당할 때마다 "공부 제대로 하지않고 여기 다시 오지 않겠다" 는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불필스님은 지금도 어려울 때면 그 시절을 되새긴다고 한다.

 

"천대받고 괄시받는 것이 대단한 기쁨이지.

우리가 찾아갈 때마다 인정으로 밥을 주고 반겼다면

벼랑 끝에 선 마음으로 지혜의 칼날을 갈 수 있었겠습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대신심(大信心) 으로 정진하라' 고 내리던 자비의 매질이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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