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산은 산 물은 물

敎當 2017. 4. 13. 10:40

한국 선() 불교 전통에 한 획을 그었던 성철(性徹) 스님이 입적한 지 8년이 지났다.

불교계 최고지도자인 종정의 자리에 올라서도 '산은 산, 물은 물' 이란 법어만 던져놓고 세속에 드러나길 꺼려했던 큰 스님.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던 상좌 원택(圓澤) 스님이 기억하는 스승의 이야기를 제98화로 연재한다.

 

가야산 단풍의 절정은 1018~25일 경이다.

그 기간이 끝나면, 붉고 노란 나뭇잎들은 나날이 낙엽으로 떨어져 뒹군다.

그런 뒤 나무는 앙상한 가지와 몸을, 본체(本體) 를 드러내게 된다.

 

1993년 그해 가을도 그렇게 빨갛게 타올라가던 무렵 나의 스승 성철 큰스님은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야산 깊은 계곡 암자에서 건강하게 한철을 넘기고 있었다 

나는 별다른 걱정 없이 스님 봉양을 시자(侍者.노스님을 뒷바라지하는 젊은 스님) 에게 맡기고

해인사 본찰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나무들이 잎을 모두 떨구고 새벽 찬바람이 겨울 한기를 느끼게 하던 113,

그날도 나는 해인사 장경각에 있던 경판을 옮기고 있었다.

 

스님이 급히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그전에 날마다 뵈올 때 "이제는 건강이 좀 좋아진 듯하니, 자주 찾아오지 말고 내가 부르면 오너라" 고 한 스승이다.

그 성품에 갑자기 찾는다는 소리에 불길한 마음이 언듯 스치고 갔다 

그래도 "설마" 하는 생각, "시자들이 스님 마음을 편치 않게 했나보다" 는 짐작을 하고 스님이 계신 암자로 올라갔다.

문안을 올리고 고개를 들자 청천벽력 같은 말씀.

 

"내 인제 갈란다. 너거 너무 괴롭히는거 같애. "

 

가슴이 덜컹했다.

선승들은 스스로 열반의 순간을 택한다고 한다.

스님의 말씀에 예전에 없던 결연함이 배어 있다.

황망한 마음에 매달렸다.

 

"시자들이 또 스님의 마음을 거스렸나 봅니다. 부디 고정하시고 노여움을 푸시지요. "  

마음을 돌이킬 스님이 아니다. 낮은 목소리는 단호했다 

"아이다. 인제는 내가 갈 때가 다 됐다. 내가 너무 오래 있었다. "

 

불과 사흘 전 나보다 선배인 상좌 원융(현 해인총림선원 유나) 스님이 큰스님을 찾았다 들려준 얘기가 생각났다.

스승이 잠든 것을 보고 원융스님이 "스님 이러한 때 스님의 경계는 어떠하십니까" 하며 물으니,

깊이 잠든 것 같던 스님이 벌떡 일어나 난데없이 뺨을 힘껏 한 대 치시더라는 것이다.

그말을 듣고 "오래 오래 계시려나보다" 고 한숨을 돌렸는데.

날벼락 같은 말씀을 들으니 갑자기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다시 한번 엎드렸다.

 

"불교를 위해서나 해인사를 위해서나 좀 더 계셔야 되지 않습니까. "  

부질없는 짓이었다.

스님의 목소리는 더 느리고, 더 단호해졌다 

"아이다. 인제는 가야지. 내 할 일은 다 했다. "

 

큰스님이 말을 마치자 스르르 눈을 감았다.

80평생을 걸치고 다니던 육신을 털기로 마음 먹은 스님. 말릴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순간을 기다리는 무기력함.

기나긴 침묵의 밤을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로 지샜다.

동녘에 여명(黎明) 이 밝아올 즈음 스님이 입을 열었다.

 

"내 좀 일어나게 해봐라. "

 

거구의 몸이 깃털처럼 가볍다.

일으켜도 자꾸 옆으로 넘어지려해 내가 옆에 붙어 어깨에 스님을 기대게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창밖에 빛이 환해질 무렵.

 

"참선 잘 하그래이. "

 

그리곤 아무 말이 없었다.

스스르 고개가 숙여지면서 숨소리도 가늘어졌다.

갑자기 세상이 '큰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원택 <성철스님 상좌>

 

원택스님 약력

 

1944년 대구 출생

67년 연세대 정외과 졸업

72년 출가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

 

★이글은 중앙일보에 연제되었던 성철큰스님의 일대기를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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