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성철스님

불교의 근본 진리가 중도에

敎當 2017. 4. 5. 14:35

불교의 근본 진리가 중도에 있음을 밝힌 스님의 중도법문

 

부처님이 뭐라고 했나 하면,

나는 모든 양변을 버린 중도를 깨달았다. 이렇게 선언을 했어요.

양변을 버리니, 곧 생멸(生滅)도 버리고, 나고 죽는 것(生死)도 버리고, 있고 없는 것(有無)도 버리고,

착하고 악한 것(善惡)도 버리고, 옳고 그른 것(是非)도 다 버렸으니,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것이 무엇이냐, '절대'다 이 말이여.

그래서 나는 상대 세계를 모두 버리고 절대의 세계를 성취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해탈성불이야.

생각해 보아라. 너희는 고행주의 아니냐. 또 세상은 모두 환락주의 아니냐.

너희들은 환락을 버리고 고행하니 가장 착한 것 같지만, 변은 둘 다 똑같다.

결국은 참으로 해탈을 하려면 고행도 버리고 환락도 버려야 한다. 두 가지를 다 버려야.......

 

일체가 불생(不生)이요, 불멸(不滅)이라는 것입니다.

일체가 나지도 없어지지도 않으니,

사람도, 짐승 도, 초목도, 돌도, 허공도, 해와 달도 전체가 모두 불생불멸이지 생멸은 없습니다.

성철스님은 불생불멸 중도법문을 아인슈타인의 등가원리를 들어서도 재미있게 설명하였습니다.

 

과학만능 시대인 만큼, 중도를 과학적으로 좀 근사하게 풀이해 보자, 이 말이여.

그럼 불생불멸하고 과학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

원자물리학에서도 실질적으로 불생불멸을 실험으로 보여주는데 성공했어.

그게 바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나오는 등가원리지.

등가원리는 이 자연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은 에너지와 질량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결국 에너지가 곧 질량이고 질량이 에너지와 같다는 거지.

그래서 유형인 질량과 무형인 에너지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거.

 

유형의 질량과 무형의 에너지가 같다는 등가원리는

유형, 무형의 형이 바뀐다 해서 그 본질이 없어지거나 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불생불멸,

모든 것이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는 설법과 결과적으로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스님은 이를 좀더 알기 쉽게 또 달리 설명하였습니다.

 

만물은 모양이 바뀐다고 해서 없어지거나 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얼음과 물의 관계와 같은 식이여.

물은 에너지에 비유하고 질량은 얼음에 비유하거든.

물 한 그릇이 얼음이 되었거든.

물 한 그릇이 얼음 한 그릇이고 얼음 한 그릇이 물 한 그릇이지.

 

유형인 질량이 무형인 에너지로 전환하고 무형인 에너지가 유형인 질량으로 전환하는데,

색(色) 이라는 것은 유형을 말하고 공(空)이라는 것은 무형을 말한다 이 말이여,

그저 입으로만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아니라,

실제 자연계가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말이지.

이런 이론을 우리 불교에서는 중도법문이라고 해. 중도법문!

 

부처님의 일대 사상을 중도(中道)로써 전한 백일법문으로 한국의 불교는 선종, 교종 할 것 없이

모두가 불교의 사상에 대해서 새롭게 눈뜨게 되었습니다.

 

이기주의에 젖은 중생들에게 연기 법칙을 설명하다

 

마음의 눈을 가리는 세 가지 독은 욕심 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것인데,

그 가운데에 탐욕이 근본이며 탐욕은 이기주의에서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무한경쟁의 이 시대에 나만 잘 살아보자는 이기주의가 성행합니다.

이기주의에 젖은 중생들에게 스님은 일체 만물은 서로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음을 설명하였습니다.

두 막대기가 서로 버티고 섰다가 이쪽이 넘어지면 저쪽도 넘어지는 것과 같이 혼자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이쪽을 해치면 저쪽도 손해를 보고 저쪽을 도우면 이쪽도 이익을 받으니,

참으로 내가 살고 싶거든 남을 도우라고 하였습니다.

 

만물은 본디부터 한 뿌리로 서로 관련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며,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는 연기의 법칙을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으며,

몸을 바로 세우면 제 그림자도 발라지고 몸을 구부리면 그림자도 구부러지듯이,

바른 업을 지으면 모든 생활이 발라지고 굽은 업을 지으면 모든 것이 굽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모든 행, 불행은 스스로 만들 결과라고 하였습니다.

이기주의와 물질문명에 병든 이 사회에 스님의 그 말씀은 청량한 법음이었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영혼의 존재와 윤회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다

 

스님은 피고 지기를 되풀이하는 이 자연계가

무상하기 짝이 없어 보여도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불멸의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이승에서의 삶을 끝내고 어디로 가게 되는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는 그 영혼이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이며 영혼이란 과연 있는 것일까?

스님은 영혼의 물질화와 영혼 사진, 정신 사진을 찍는데에 성공함으로써

영혼불멸 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며

정신 에너지는 살아서나 죽은 뒤에나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보존된다고 하였습니다.

 

또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다시 윤회(또는 재생)하며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란 사막에서 풀잎 얻는 것 만큼이나 어려우며

사람이 아니더라도 영혼이 다시 몸을 받아 태어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몸을 받지 못한 수많은 영혼이 허공을 떠다니고 있으며,

윤회는 지구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를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깨우쳐 주었습니다.

 

윤회하는 근본 원칙은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업에 끄달려 서만 된다고 하였습니다.

, 착한 일을 많이 했으면 행복한 내생이 되고 악한 일을 많이 하면 불행한 내생이 된다는,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의 인과법칙에 따라 윤회하는데,

그런 사실이 과학적으로 판명되었음을 또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중생들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윤회의 고리에 갇혀서 억겁을 두고서 나고 죽는 고통스런 순환을 되풀이하면서,

인간으로, 동물로, 미물로, 때로는 초목으로 몸을 바꾸어 태어난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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