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나의 수행일지

수행(修行)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敎當 2017. 3. 17. 11:35

수행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산에 들어가서 토굴에서 생활을 하고

수염도 기르고 옷은 누더기처럼 기은 입고 나무지팡이를 짚고 다니고...이처럼 상()이 있다.

현대를 살다보면 어지간한 시골에도 전기도 다 들어오고 문명의 혜택을 받다 보니

수행처가 점점 사라져 좀처럼 수행자를 찾기 힘들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수행은 이처럼 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곧 수행처라고 생각한다.

내 경우만 하더라도 하루에 정좌로 앉아 수행하는 시간이 7시간 정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수행하는 것을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직장을 가지고 있는 것만 봐 왔기 때문에

그런 이유만으로 수행인이라 불리기보다는 영업인이라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ㅎㅎㅎ

 

밤길을 가는데 길 한가운데 또아리를 틀고 있는 뱀을 보고 기겁을 해 도망을 쳤다.

다음날 다시 그 자리에 가 보니 뱀은 없고 떨어진 동아줄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만약 다음날 다시 가서 확인을 하지 않았다면 이 사람은 그날 밤에 본 것이

독이 잔뜩 올라 또아리를 틀고 앉아있는 뱀을 봤다고 굳게 믿고 평생을 살았을 것이다.

일평생을 잘못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내가 봤어!”라고 주장하면서 싸우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봤지만 본 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봤다는 것이 진실을 가리키는 잣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본다면 들었다는 것도 다 진실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회사에서 점심때마다 국민체조운동을 한다.

반복해서 2회를 하는데 한번이 끝나면 <되풀이>라고 하는 구령을 들을 수 있다.

오늘 이 얘기를 하다 보니 같은 말을 모두 함께 들었는데도 되풀이로 들은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각대로 이 말을 듣고 뇌 속에 저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떤 분은 되풀이라고 제대로 들었지만 어떤 분은 옆구리 어떤 분은 ○○○이라고 들었다.

자기 마음이 투영되어 같은 단어를 듣고도 각양각색으로 들었던 것이다.

같은 말을 듣고도 각양각색 일 수 있는데 어떤 일을 동일하게 경험했다고 해서

그에 대한 평가나 기억도 다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세일 때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되나요?>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서 올렸다.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하다가 명확한 답이 안 나오니까 전부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그렇게 머리 아픈 곳에 전세 들어갈 필요가 있느냐?”

이처럼 어려운 일에 봉착을 하면 자기 그릇대로 일을 마무리 하려고 한다.

어렵기 때문에 남들이 안 쳐다보거나 아예 생각을 안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취 해내는 그 쾌감에 밤을 지새울지 모른다.

내 경우에는 어려움을 어려움이라 생각하지 않고 수행한다고 생각을 한다.

그러니 힘든 것도 어려운 것도 피하는 것도 없다.

수행이니만큼 꼭 극복해야 한다는 마음도 없으니 그냥 그 과정이 하나의 삶이다.

 

불교에 입문을 해서는 금강경에 나오는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主 而生其心) 한 줄을 읽고

크게 깨우쳤다는 육조 혜능스님의 일화를 읽고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지...ㅎㅎㅎ

머무름 없이 마음을 내라는 이 한마디가 금강석처럼 굳어있던 내 마음을

겨우내 얼었던 강물이 풀리듯이 녹아내리면서 물처럼 흘러갔다.

영업을 하다보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 된 것처럼 생각이 들었는데 깨지는 것은 물론이고 마지막 순간까지 앞날을 알 수 없어

안 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가슴 졸이며 살았던 영업 초기의 삶에서 벗어나

지금은 안 되던지 잘 되던지 아무 마음의 변화도 없고 한다면 하는가 보다 생각하고

한다고 했다가 안 한다면 도로 돌려주는 삶이라서 영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없다.

이런 마음을 내기까지는 많은 수행이 필요했는데 영업을 하면서도 영업이라고 생각 안 하고

모든 일이 수행이라 생각하면서 살아온 결과물이지 않을까 자평(自評)을 한다.

 

얼마 전에는 지금 살고 있던 집 주인과 마찰이 있었다.

아주머니가 모든 일을 다 처리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이 분이 돌아가시면서 불거졌다.

아주머니가 하던 일을 딸이 맡아서 하면서 전기세 요금이 잘 못 계산이 되었고

이것을 알리고 바로 잡아달라고 하자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변명을 하고

이미 이사 전에 확정되어 있던 사항을 들먹이며 억지를 부리다가 마침내 어머니가 하던 방식이라

나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식으로 버티길래 돌아가신 어머니 핑계를 대지 말고

돌아가신 분이 계산하던 방법을 지금 와서 따지고 싶지는 않으니 지난 일은 접고

지금부터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 달라고 했는데도 막무가내식으로 나왔다.

그러더니 오빠와 상의를 하라고 인해전술(?)을 폈는데 전기세 그것이 얼마나 된다고!”

오빠라는 사람의 이런 반응에 당신네가 쓴 얼마 안 되는 전기세 세입자에게 떠 넘기냐고

발끈하면서 사실 이때 평상심(平常心)이 흔들렸다.

 

과거 한 성격 하던 나는 나이도 어린 집주인 딸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오빠라는 사람으로부터

집주인이 집을 팔아야 할까요? 아님 세입자가 대책을 세워야 할까요?”라는 말에 과거 성질이 불쑥 올라왔다.

집주인 남자는 나이도 많고 귀도 어두운데 자식들 말만 듣고 갑자기 내가 이사 갈 일이 생기니까

이사비용과 복비 받아가려고 분란을 일으키고 꼬장(?)을 핀다는 말을 서슴치 않고 했다.

장사꾼 집안 출신이라 그런지 이익만 쫒아 막무가내식 말에 유리하면 삼키고 불리하면 모르쇠다.

본인에게 유리한 것은 알아듣고 불리한 것은 귀가 어둡고 무식해서 잘 모른다는 식이었다.

도무지 대화도 안 되고 욕이 목구멍까지 차 올라왔지만 수행이라 생각하고 억눌렀다.

 

처음 이틀 정도는 마음이 안정이 안 되었다.

욕이라도 할까? 싸움이라도 할까? 갈등이 있었지만 얼마 안 되는 돈을 가지고

그 그릇뿐이 안 되는 사람과 싸우면 뭐하랴 싶은 마음도 들고

때로는 전생에 조금 진 빚을 지금 갚는다고 생각을 하면서 참기도 하고

지금 화를 내면 10년 넘게 닦아온 내 수행이 다 무너진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라는 존재를 없애야 부처를 이룰 수 있다는 불경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참았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신기하게도 이틀 정도 이런 마을 잡이를 하자 분노도 사라지고

마음은 그냥 평정심을 찾으면서 나를 중심으로 둘러친 경계를 허물고 그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과정이 있었지만 집주인 아저씨가 미안했는지 내려와 악수를 청하면서 일은 일단락되었다.

누군가 세월이 약이라고 하던데 그 말이 어쩌면 그리 딱 맞는 표현인지...^^

 

태풍이 불기 전에도 바다는 고요하지만

태풍이 불고 난 후에 바다는 더 고요하네

바다에서 성나는 파도를 볼 것인지

파도 속에서 고요한 바다를 볼 것인지는

오로지 내 마음에 있구나

파도 없는 바다는 이미 바다가 아니니

수행 없는 삶은 죽은 이와 다르지 않네

그래서 바람 불어 좋은 날이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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