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수월스님

오대산 상원사 이야기

敎當 2017. 1. 6. 15:38

수월이 상원사에 머문다는 소문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수월을 보려고 오대산을 찾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볼품없이 생긴 나무꾼

밭일하는 일꾼

불지피는 못생긴 중만 만나고 갔을 뿐이다.

 

오대산 상원사는 세조와의 뜨거운 인연 이래 특히 왕실과 교류가 깊었다.

그래서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왕실 사람들과 궁녀들의 발길이 잦은 일종의 원찰 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수월 도인이 머물고 있다는 말에 길을 가리지 않고 상원사를 찾았다. 

그러나 그들이 상원사에서 만난 사람은 금란 가사에 위엄이 발끝까지 내린 도인이 아니라,

너무나 초라한 모습의 부목이나 나무꾼이었다.

수월에게 정작 수월 도인이 계신 처소를 물어 그 처소를 찾았지만 수월 도인은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수월 도인이 계신 처소를 방문했다는 환희심에

값비싼 중국 비단을 비롯한 갖은 예물과 음식을 정성스레 올렸다.

 

수월은 이런 것에 어떠한 눈길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값비싼 것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

그 값비싼 중국 비단을 북북 찢어 사중 대중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조금도 차별 없이 골고루 나누어 주고는

별다른 공덕 없이 받은 시주로 인한 업연의 무서움에 끝없이 참회하고 가슴아파했다. 

진리든 성자든 보는 그 순간에 알아보지 못하면 참으로 보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뭇짐을 지고 오는 수월에게

"수월스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들은 지금부터 아흔 해 전에

상원사로 수월을 찾아간 그때 그들이 아니라 지금 이 글을 쓰고, 또 읽고 있는 우리 자신인지도 모른다.

 

수월은 무턱대고 스승을 찾아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구름에 가린 달을 보려면 먼저 달빛이 스며 있는 구름을 찾아야 하듯이

사라진 스승을 찾기 위해서는 스승의 흔적이 묻혀 있는 소문을 먼저 찾아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묘향산에 들어가 보기 드믈게 한 산에서 세 해를 머문 것은

스승을 숨기고 있는 소문이라는 구름을 어떻게든 찾아내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묘향산으로 들어 가기 전 수월은

서산에 내려가 그의 아우 만공을 만나 이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효성이 지극했던 만공은 그 무렵 어머님을 모시고 있던 터라 스승을 찾아서 떨치고 나설 형편이 아니었다.

수월은 자랑스러운 아우 만공과 헤어지면서 이런 법답을 나누었다. 

수월이 만공에게 숭늉 그릇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여보게, 만공. 이 숭늉 그릇을 숭늉 그릇이라고 하지 말고 숭늉 그릇이 아니라고도 하지 말고 한 마디로 똑바로 일러보소." 

만공은 문득 숭늉 그릇을 들어 문 밖으로 집어던지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 

수월이 말했다.

"잘혔어, 참 잘혔어!" 

이 법담을 나누고 헤어진 수월과 만공은 이후 이승에서는 두번 다시 서로 만나지 못했다. 

 

수월은 강계 땅에 들어왔다.

묘향산에서 강계까지는 걸어서 닷새쯤 걸린다.

스승을 찾으려고 묘향산에 들어간 수월이 세 해 뒤인 1910년에 강계 바닥에 나타난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수월이 경허가 있는 곳을 손 안에 쥐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할 수 밖에 없으리라. 

그 무렵 경허는 선비 박난주 또는 유발거사 박진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훈장 노릇을 하며

관서와 관북은 물론 국경을 넘어 만주 지방까지 비승비속 차림으로 떠돌고 있었다. 

 

수월이 스승을 찾아 강계 땅 등을 돌아다닐 때 이런 일이 있었다.

그날도 수월은 탁발을 하며 떠돌다가 해가 저물자 마을 가까이에 있는 어느 절로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절은 불에 타서 잿더미가 되었고 절 마당 가운데에는 젊은 스님이 꿇어 앉아 통곡하고 있었다.

수월은 탁발해간 조 몆 줌을 덜어 밥을 함께 지어 먹으면서 제 실수로 절을 태워버린 뒤

큰 죄책감 속에 빠져있는 젊은 스님의 속 이야기를 말없이 들어 주었다.

다음날 수월은 길을 떠나기에 앞서 젊은 스님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한 번 지나갔으니께 이제 괜찮을 거구먼, 부지런히 정진이나 하도록 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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