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수월스님

물레방아 돌확에 머리를 넣고 잠들은 수월스님

敎當 2017. 1. 3. 11:38

수월이 천장암에 들어온 지 꼭 세 해가 되던,

그러니까 그의 나이 서른세 살이 되던 해 겨울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수월은 하루 일을 다 끝내고 절 아래 있는 물레방앗간으로 내려가 방아를 찧고 있었다.

저녘 예불을 마치고 곧바로 내려간 것이다.

 

겨울밤인지라

별빛은 터질 듣이 초롱 초롱 빛나고 서산 앞바다를 스쳐온 찬 바람은 아늑한 솔밭 속으로 끝없이 젖어 들었다.

수월은 낮보다는 밤이 좋았다.

모든 것들이 그들의 소리와 모습을 묻어두고 사라지는 밤, 특히 겨울밤은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겨울밤은 한 해 가운데 어둠이 가장 짙고 고요함이 가장 깊은 밤이 아니던가.

 

천장암 물레방아는 "물레방아", 곧 물을 가두었다가 그 물이 떨어지는 힘으로 돌리는 방아였다.

절에는 방아 찧을 일이 많았다.

식량으로 쓸 알곡식을 만드는 일이며,

밀가루, 콩가루, 떡가루, 고춧가루를 만드는 일들을 수월은 혼자서 도맡아 했는데,

이 날은 모처럼 쌀 방아를 찧게 되었다.

머지않아 맞게 될 새해 설날에 쓰기 위한 것이었다.

해가 짧은 겨울철인지라 수월은 방아 찧는 일은 늘 밤에 하곤 했는데,

방아 찧을 거리가 많으면 첫 새벽까지 일을 해야 했다.

 

" , ! " 정해진 장단에 맞춰 방앗공이가 오르내렸고

그때마다 수월은 머리를 숙이고 돌확 안에 손을 넣어 곡식을 고루 저었다.

그 시절 수월은 일하는데 별다른 맛을 느끼고 있었다.

천수다라니를 지송 하는 일과 방아 찧고 나무하는 일이 마치 물과 소젖이 어우러지듯 한몸이 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들어도 그의 삶을 내던진 천수다라니의 푸른 강물은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연암산 제비바위에 앉아 바다 너머로 떨어지는 붉은 해를 바라보아도,

나뭇짐을 지고 오다 발을 헛디뎌 곤두박질을 쳐도,

심지어는 그렇게 혼을 뒤흔들던 스승 경허를 보아도

성스러운 수월의 다라니 강물은 유유히 흘러만 갔다.

손발은 얼어터지고 몸은 마른 수수깡처럼 말랐지만 그의 빛나는 눈빛은 하루하루 관음의 눈이 되어 가고 있었다.

 

수월이 방아를 찧던 그날 밤,

천장암 주지인 태허는 일이 늦어져서 자정이 다 되어서야 절로 돌아왔다.

태허는 절 들목에 있는 물레방앗간을 지나다 참으로 희안한 일을 보았다.

방앗간 안에서는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나오고 물은 세차게 물레방아에 떨어지고 있건만,

웬일인지 방앗공이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은 것이었다.

방앗간으로 뛰어들어간 태허는 그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방앗공이는 금방이라도 내리찍을 듯 허공에 매달려 있는데 수월은 돌확 속에 머리를 박고 아기처럼 잠들어 있지 않은가!

 

태허는 단숨에 달려가서 수월을 끌어냈다.

그 순간 방앗공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산이라도 무너뜨릴 기세로 다시 ",!" 소리를 내며 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다음날 태허는 이 믿기지 않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고 수월을 위해 수계식을 열었다.

드디어 수월은 예비 승려인 사미승이 된 것이다.

사미란 법어인 "스라마네라"의 소릿말로, " 악을 그치고 자비를 행하는 사람" 이라는 뜻이다

오랜 행자 생활을 끝내고 정식으로 가사와 장삼을 입고 부처님 앞에 향을 사뤄보지 않은 사람은

그 기쁨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다고 한다.

수월은 태허를 은사로 삼고 "음관"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깨닳음 수월의 수행 시절은 아무래도 육조 혜능 스님을 닮았다.

나무꾼 출신인 데다 키도 작고 생김새도 볼품없던 수월은

스승 경허가 일러준대로 종일토록 일만 하면서 죽기살기로 " 대비심다라니" 만을 외웠다.

일은 수월이 좌선하는 방석이었고 다라니는 그의 화두였다.

흔히 수행을 " 움직이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 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행위도 묶고, 말도 묶고, 생각도 묶어야 하는 수행의 근본 정신을 바로 알지 못함이라 하겠다 

그것은 수행의 다만 수행의 형상일 따름이지 수행의 내용은 아니다.

수행의 겉모습을 조금만 헤치고 들어가면 묵어야 할 그 어떤 행위도 말도, 생각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했으니 말이다.

이 자리에 이르면 움직이고 말하는 일들이 수행과 다른 세계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저 양나라 지공 스님은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닌지.

" 큰 도는 언제나 우리의 귀와 눈앞에 있다.

바로 귀 앞에 있고 바로 눈앞에 있건만 그것을 보고 듣는 이가 참으로 드믈구나.

저 도의 참모습을 깨닳으려면 소리며 빛깔이며 말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 "

 

수월은 사미계를 받던 해 이레 동안 용맹정진을 하였다.

수월의 손이 잠시 쉬면 천장암의 하루가 돌아가지 않던 무렵이었건만

이레 동안이나 꼼짝달싹하지 않고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니!

이런 대단한 보너스(?)를 수월이 스스로 청해서 받았을 턱이 없다.

수월로서는 한끼의 밥이라도 일하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하건데 이 일은 "방앗간의 기적"을 눈으로 본 태허의 결단이거나

아니면 이 말을 전해들은 경허가 시켜서 한 일이었을 것이다.

경허는 수월이 이미 깨닳을 때가 무르 익었음을 알고 있었을 터이니 말이다.

수월은 그 이레 동안의 용맹정진을 가지려고 얼마나 길고 철저한 준비를 해야 했던가.

열다섯 해 동안 들판 살이를 통해 업장을 맑히고

다시 세 해 동안 행자 수업으로 삼매의 힘을 길렀으니 말이다.

 

수월이 용맹정진을 한 방이 어느 방이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경허가 한 해 석 달 동안 용맹정진한, 바로 한 평 남짓한 그 작은 방이었을까.

아니면 그 방이 붙어 있는 몸체가 큰 방인 열 평 남짓한 선방이었을까.

잘 알 수는 없지만 수월의 됨됨이로 보아 그런 곳이 아니라

천장암에서 가장 쓸모없는 뒷방인 평소 자신이 쓰던 방이 아니었을까.

그는 태어나 처음 얻은 이레 동안의 휴가만으로도 몸 둘곳을 몰라 했을 것이다.

 

수월은 아마도 그 작고 어두운 방에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렇게 다짐 했으리라.

"먹지 않으리라, 마시지도 않으리라, 이레 낮, 이레 밤을 산처럼 앉으리라.

만일 이 수행으로 얻는 공덕이 있다면 모든 중생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남김없이 공양 올리리라."

수월은 방석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 대비심 다라니"를 외기 시작했다.

한번 흘러나오기 시작한 그의 대비주는 끊어짐이 없었다.

수월은 먹을 틈도, 마실 틈도, 뒷간에 갈 틈도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음식 그릇은 되돌아가고 다시 되돌아 가고 하지만 그의 대비주는 점점 더 깊고 큰 울림이 되어 연암산에 퍼져 나갔다.

마치 수월은 '대비심다라니'가 콸콸 솟구치는 영원한 '다라니 샘물'인 듯했다.

샘물은 흘러 내를 이루고 내는 다시 강을 이루고 강물은 유유히 관음의 가슴인 자비의 바다를 향해 달렸다.

 

이레째 되던 날 밤, 아랫마을 장요리에서는 " 불이야! " 하는 외침과 함께 느닷없는 종소리가 요란 스럽게 울려 퍼졌다.

잠자리에 들려던 마을 사람들은 물동이며, 괭이며,

빗자루 같은 것들을 집어들고 문밖으로 뛰어나와 사방을 둘러 보았다.

불길은 자신들의 집이 아니라 연암산 중턱의 천장암 근처에서 일고 있었다.

불기둥은 엄청났다. 온 산골짝을 환히 밝혔고, 불꽃은 다시 하늘 위까지 솟구쳐 연암산 너머로 까지 번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 불꽃은 바라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이 아닌 말로 형언할 수 없이 맑고 장엄한 환희와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

천장암으로 달려온 마을 사람들은 비로소 그 불빛이 왜 그토록 그들을 기쁘게 해 주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의 동요를 진정시키려고 밖에 나와 있던 천장암 스님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 불기등은 수월스님이 몸으로 뿜어낸 빛이라는 것이다.

방아 찧으러 오면 말없이 일을 거둘어주던 방앗간지기

몰래 절 산에 들어가 나무 할 때면 나무를 한 아름 가져다 머리에 이어주기까지 하던 나무꾼,

마을 사람들은 마을로 되돌아가는 길에 입을 모아 말했다.

 

"그 빛은 남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바람으로 가득 찬 나무꾼의 가슴에서 툭터져 나온 것" 이라고,

그날 밤 이 빛을 본 숲, 바위, 나무, 개울물, 바람, 노루, , 하늘, , 귀신 그리고 밤은 더없이 기쁘고 행복하게 잠들었다 

수월은 이러한 체험을 한 뒤 세가지 특별한 힘을 얻었다고 한다.

첫째는 한번 보거나 들은 것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 슬기. 곧 불망념지(不妄念智)를 얻은 것이요,

둘째는 잠이 없어져버린 일이요,

셋째는 아픈 사람의 병을 대번에 고칠 수 있는 힘을 얻은 것이다.

 

그렇지만 부처님 집안에서는 수행을 하여 얻는 특별한 능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사월 초파일처럼 절 집안에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으레 부처님 앞에서 신도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의식을 치른다.

이 의식을 '축원'이라고 하는데

먼저 신도들의 주소, 나이, 이름을 적은 축원장을 하나하나 읽은 다음 이런저런 원을 정성껏 빌고 다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축원을 올리려면 만들어놓은 축원장을 다시 찾고

신도들이 처음 오면 축원장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일이 여간 번거롭지 않았다.

신도들 수백, 수천이 모이는 행사에는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는 일이 없게 된 수월은 수고롭게 축원장을 다시 찾거나 새로 쓸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가만히 앉아서 신도들이 불러주는 주소며 가족사항이며

바라는 바를 듣고만 있다가 부처님 앞에 나아가 그대로 막힘없이 외웠다.

 

그날 모인 신도들이 백 명이든 천 명이든 상관 없었다.

수월의 이 불가사의한 기억력 앞에 말문이 막힌 스님들이

"스님,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수월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쓰고 찾는 일이 훨씬 어렵지 않남."

이렇듯 수월은 그의 불가사의한 능력을 마치 코로 숨 쉬는 일만큼이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또 수월은 잠이 없어져 그 뒤 일생 동안 자리에 드러눕지도 않고 여러 사람의 병도 고쳐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