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수월스님

마하연 이야기(된장국 스님)

敎當 2016. 12. 27. 14:56

그때도 여름철 안거 기간이었다.

수월은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더는 감출 수 없었다.

마하연에는 유점사에서 얼굴을 익힌 스님들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은 수월을 조실로 모셨다.

조실이란 대중들을 지도할 수 있는 높은 수행력을 지닌 스승에게 올리는 자리다.

쉬운 말로 마하연의 가장 큰 어른이 된 것이다 .

 

마하연이 있는 주봉을 법기봉이라 부른다

이는 이곳이야말로 법기보살이 늘 계시는 곳으로 금강산 가운데 금강산임을 드러낸 이름이라 하겠다.

그래서 예부터 마하연이 깔고 않은 자리를 "금강산의 복장" 이라고 부른 것이다.

이 절은 한국 불교의 영원한 스승인 의상스님이 화엄을 가르치려고 지은

열 개의 절 가운데 하나로 부석사와 더불어 가장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해방되기 전까지 마하연에는 "동국제일선원" 이라는 큰 선방이 있었다.

그 전통이나 규모가 이름그대로 조선에서 으뜸가는 참선 수행처였다고 한다.

 

마하연이 언제부터 화엄종 절에서 참선하는 절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려말의 큰 선승인 나옹이 머물렀고

호법왕인 세조가 이곳을 참선 전문 도량으로 정하고

참선 말고 다른 불사는 아예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 전의 일임을 알 수 있다 

수월은 그의 나이 서른여덟 무렵에 이처럼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수행장인 마하연의 어른이 되었다.

천하의 영재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스승 노릇도 쉽지 않겠지만

천하의 뛰어난 수행자들을 가르치는 선지식 노릇의 어려움에는 견줄 수 없을 것이다 

선지식은 무서운 독사와 한방에서 살듯이 하루 스물네 시간을 온전히 깨어 있어야 한다.

단 한 순간이라도 깨어 있지 못할 때가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 수행승들의 날카로운 독침을 맞고 목숨을 잃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옛날 어느 큰 스님의 회상에 많은 수행자들이 모여 뜨겁게 정진하며 살았다.

어느 날 큰스님은 대중을 모두 모아놓고 자신은 이제 열반에 들 때가 왔다고 말했다.

스승을 잃게 된 수행자들은 눈앞이 캄캄했다.

그래서 수행자들은 스승께 간절히 청을 올렸다 

"스승님 정말 떠나셔야만 한다면 앞으로 저희들을 이끌어줄 새 스승을 일러 주십시요."  

그래서 스승은 대중 가운데 한 스님을 가리키고 그 스님의 가르침을 받으면 모두 생사를 해탈하게 되리라고 말했다.

 

대중은 믿을 수 없었다.

스승게서 일러준 스님은 날마다 한 마디 말도 없이

공양간에서 국 끓이는 일이나 하고 지내는 그야말로 뜻밖의 스님이기 때문이었다.

이 스님은 된장국 끓이는 솜씨가 뛰어나 대중들은 그를 '된장국 스님' 이라고 불렀다.

대중은 믿기지 않아 다시 물었지만 스승의 대답은 마찬 가지였다.

스승이 열반한 뒤에 대중들은 모여서 이 일을 놓고 며칠을 두고 의논했다.

공양간에서 서른 해 동안 국만 끓여온, 무식하고, 못생기고, 어수룩한 부엌데기 스님을

선뜻 새 스승으로 받들 마음이 들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대중은 먼저 이 스님이 스승 자격이 있는지를 살피기로 했다.

대중은 된장국 스님이 늘 하는 일 가운데 한 가지 별난 점을 찾아 냈다.

그는 밤 열시, 잠자는 시각을 알리는 종소리가 나면

큰 물그릇에 물을 가득 담아 들고서 숲이 우거진 십여 리 산길을 혼자 다녀 오는 것이 아닌가!

이 알 수 없는 새 스승의 이상한 행동은 그가 국 끓이는 일을 시작하던 서른 해 전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해온 그만의 특별한 수행 일과였다.

대중은 다시 모여 새 스승을 시험할 방법을 의논했다.

 

때는 여름철 어느 날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검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대중들은 마을에서 사냥꾼 몇사람을 불러 가장 음침한 길 옆에 숨어 있다가

된장국 스님이 나타나면 함께 화총질을 하라고 시키고서 그 숲 속에 숨어 된장국 스님의 반응을 지켜 보기로 했다.

드디어 칠흑같은 어둠을 헤치고 된장국 스님이 나타났다.

그의 발걸음은 마치 얇은 얼음판을 밟고 가는 듯하여 한 가닥 풀벌레 소리마져 그치게 하지 않았다.

그의 가슴에 품고 가는 물그릇은 그냥 물이 가득 찬 그릇이 아니었다.

그것은 온 법계의 부처님이 함께 계시는 불국토이거나 아니면 모든 중생의 생명이 담긴 생명의 바다처럼 보였다.

 

갑자기 천지를 뒤흔드는 총소리가 그의 귓가에 울렸다.

숨어서 지켜보는 대중의 숨이 너나없이 멎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된장국 스님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걸어갔다.

그에게는 그 요란한 총소리가 풀벌레 소리쯤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 듯해 보였다.

수십 걸음을 더 걸어가던 된장국 스님이 가만히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물그릇을 길옆에 있는 바위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더니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이렇게 말했다 

", 놀랐다!"

 

대중은 울었다.

그들의 눈물은 환희의 눈물이자 기쁨의 눈물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 버릇없는 시험을 함으로서 탐욕, 성냄, 어리석음 뿐만 아니라

사랑과 지혜와 착함에도 꿈쩍하지 않는 큰 스승을 얻었으며

오직 겉모습에만 의지하여 참된 스승을 몰라본 그들의 어두운 눈 또한 말끔히 씻어버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