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수월스님

유점사이야기

敎當 2016. 12. 26. 15:33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피해 금강산 유점사로 들어간 수월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고 날마다 산에 들어가 땔나무나 해 나르며 지냈다.

그래서 누구도 그가 한참 이름을 드날리던 천하의 수월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곧 자기의 냄새를 피우지 않고 살기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결코 자신을 숨기는 일이 아니라 실상 아무것도 드러낼 것이 없는 삶을 그대로 살아가는 것으로

참으로 자기를 온전히 비운 이들만의 몫이기 때문이다.

수월은 유점사 시절뿐만 아니라 한평생을 그렇듯 살다 갔다.

 

어느 여름 날이었다.

나무를 한 짐 해온 수월은 그날따라 점심공양 시간인데도 말없이 나뭇단 위에 앉아 깊은 삼매에 들었다.

때는 여름 결재철이었지만 수월은 나무꾼 노릇을 하고 있던터라 공양도 아무데서나 쭈구리고 앉아 되는 데로 했다.

그런데 그날은 그런 공양도 들지 않고 큰방 공양이 다 끝나도록 꼼짝도 않고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침 공양을 마치고 나오던 주지 스님이 그 앞을 지나다 수월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던지 걸음을 멈춰 섰다.

그러자 수월이 비로서 감은 눈을 뜨면서 주지 스님에게 말했다.

 

"어서 산문 배깥에 나가보서유. 인연이 깊은 시주가 올라오고 있구먼유."

주지 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수월의 말에 이끌려 소임 보는 스님 몇몇과 함께 서둘러 산문 밖으로 나갔다.

과연 산문 밖을 조금 벗어나자 쉰이 넘어 보이는 한 부인이 젊은 아낙 몇을 거느리고 유점사로 올라오고 있었다.

부인은 퍽 가냘파 보였지만 얼굴과 몸에 배어있는 기품으로 보아 지체 높은 집안에서 왔음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로 뒤에는 빈 가마를 멘 가마꾼들이 조심스럽게 부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 부인이 바로 조선말 청렴결백한 벼슬아치로 유명했으며 서예에도 뛰어나

필법이 웅건하고 나이가 여든에 이르도록 완력이 대단하던 김성근 판서의 아내였다.

 

부인은 평소 불심이 아주 깊었는데 유점사를 찾아온 까닭은 이러했다.

부인은 열 해 전부터 까닭 모를 병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엔 병이 더욱 깊어져서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월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수월을 만나면 반드시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자신도 모르게 일었다.

그래서 이곳 저곳으로 사람을 보내 수월의 행방을 알아보다가

수월이 유점사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둘러 행차를 결심하게 되었다.

집안 사람 모두가 나서서 말렸지만 부인의 결심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부인은 "다행히 수월스님이 계시면 내 병은 나을 것이고

또 그렇지 않더라도 숨을 거두기에 앞서 유점사 부처님 앞에 절을 올릴 수 있으니 그 아니 좋은가" 하고 말했다 

때는 여름으로 접어 들었으나 북쪽 땅 깊은 살골자기에는 아직까지 봄바람과 봄꽇이 그대로 남아 있어

오가는 길손들의 눈과 귀를 맑게 깨워주었다.

김성근 판서의 부인은 유점사 들목에 이르자 가마를 세웠다.

가마 밖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너무 고와 잠시 그 물가에서 쉬어가고 싶어서였다.

꾀꼬리 울음소리로 하늘은 더욱 푸르렀고

주위에는 커다란 소나무와 전나무가 우거져 있었으며

산자락 여기 저기에는 자두나무, 배나무, 벛나무, 철쭉나무가 봄날을 연출하듯 가지가지 꽃을 토해내고 있었다.

 

초여름의 금강산, 그것은 얼굴을 붉히고 우는 듯 웃는 듯 살포시 머리를 들고 있는 선녀의 모습과도 같았다.

개울가 바위 위에 자리를 꾸미고 앉아 있던 부인은 저도 모르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기 시작했다.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지극한 마음은 맑은 개울물이 되어 가슴골 구석구석을 끝없이 흘렀다.

이때가 바로 수월이 점심을 들지 않고 삼매에 든 그 시간이었다.

자비삼매란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해인삼매 이기도 하다.

 

자비의 가슴을 향해 손을 모으는 마음과

그런 마음을 바로 비추어 보는 자비의 바다는

모든 형태의 시간과 공간을 넘어 바로 하나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기도란 생각이 아니라 삼매를 이루는 길이기도 하다.

수월의 '대비심다라니'의 바다와, 판서 부인의 오직 자비의 바다를 그리워하는 맑은 마음은 그래서 하나가 된 것일까.

기도를 마치고 난 부인은 갑자기 무거운 짐을 벗어버린 듯한 가벼움을 느꼈다.

그래서 몸을 움직여도 보고 몸을 부축하던 아낙들을 물리치고 혼자 걸어도 보았다.

날 듯이 가벼웠다. 온몸에 새 기운이 감돌았다.

건강한 사람들과 매한가지로 산길을 오르는 부인을 지켜보던 일행은 모두 할말을 잃고 말았다.

부인과 함께 절로 돌아온 주지 스님은 비로소 나무꾼 스님이 바로 천하의 수월임을 알았다.

 

가사 장삼을 입고 대중과 함께 수월을 찾았으나 수월은 벌써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건강을 온전히 되찾은 판서 부인은 끝네 수월을 뵙고 예베드리지 못한 큰 아쉬움을 안고 서울로 돌아왔고

수월을 잊을 수 없는 마음에 해마다 유점사 대중에게 공양미를 정성껏 올렸다.

이 무렵 김성근 판서의 나이가 쉰다섯쯤이니 그때 풍습으로 보면 그 부인은 그보다 한두 살 많은 쉰예닐곱쯤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수월의 나이 서른다섯 무렵의 일인 것 같다.

수월은 그로부터 두세 해가 지난 후 다시 금강산을 찾아가 마하연에 머물렀다.